인연 인연 조그마한 틈도 용인 않던 돌계단에 아무도 모르게 삐거덕 했을 틈이 생겼다 어디서 유배 온지도 모르는 쑥 한포기 한로도 태풍 솔릭도 콩레이가 지나가도 굳건하다 푸른 피 피워 올린 봄날같이 아직은 자기 영역 확장에 열심이 아 곱살스런 꽃길도 마다하고 바람에 부대끼며 깊어진.. 시 2018.10.10
착각 착각 그 때 산 밑 못골에 가면 재실도 많은 그 동네에는 뻐꾸기 소리 유난히 우렁찼다 객사한 영구 할매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는 게 아니라 오목눈이를 위협하는 소리다 제 새끼도 못 키우는 주제에 목소리는 커서 그걸 봄날의 전령이라고 누가 그랬지 적자생존을 알지 못하는 사이 모성.. 시 2018.10.10
꽃무릇2 꽃무릇2 9월 가느린 여자가 괭이를 물었다 거친 땅속에서 얼마나 울었나 여러 가을 전조들이 보낸 그리움으로 가득 찬 연서 한 장으로 외롭게 걸친 것도 없이 불쑥 맨발로 뛰어나와 산발한 머리 언젠가 홀연히 떠나갈 여린 여자여 가슴 시린 흔적일랑 남기지 마라 급하기로는 내 어릴 적 .. 시 2018.09.27
낮술 낮술 언젠가 문배주를 마셨다더니 누가 평양 가면서 좋은데이를 들고 가던 날 무슨 좋은 날인지 친구가 한 박스를 준다 산 숭어가 도마 위에서 거친 숨을 내쉬는 주막 연신 주모는 예쁜 손질을 마치고 계란형 접시에 수북이 담아 오면서 한잔하잖다 토막난 그녀의 이야기는 창자가 제거.. 시 2018.09.25
그 남자의 변명 아침을 여는 책향시 735 그 남자의 변명 까치실 마을 어귀 그 사네의 집 삽짝문 옆 붉은 칸나꽃들 멀리서도 다 보인다 소나무가 바람소리에 황소울음 토하면 당넘어 가는 닭 벼슬 같은 열기 아무도 모르지만 무거운 삶의 짐 한 짐 부려 놓은 여름 상처 깊은 오롯한 욕망으로 새벽에 툇마루.. 시 2018.09.08
은행나무 공양 아침을 여는 책향시 743 은행나무 공양 자주 가는 절 입구에 가면 비탈에 꼿꼿이 선 은행나무 하늘과 대비되는 무언의 공양 하늘 캔버스에 은은한 물감으로 그린 그림 노란색으로 환한 신비로운 공양에 계절의 변화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고 거닐던 거리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그리움을.. 시 2018.09.05
금포* 물메기 금포* 물메기 새벽이 주섬 주섬 어구를 챙기는 버닷가에 산그늘 훌쩍이면 홀로 몸을 뉘는 흰여* 금산 바람이 불 적마다 바다 속 뒤집히고 그 사이 놀란 굴참나무 잎 맨발로 우수수 지던 날 쇠개마을 통발들 쉴 틈이 없다 물미해안이 소용돌이로 주먹 불끈 쥐고 나오는 저 창해 밑바닥에서 .. 시 2018.09.04
선소항 전어 아침을 여는 책향시 741 선소항 전어 망운산 자락은 가을바람을 안은 버리들에서 꺾여지고 골깊은 심천다리팍에서 야속한 과거를 말하던 물새들이 부둣가 방파제에 모여든다 전어맛을 기억하는 며느리들이나 이두박근에 푸른 정맥 선명한 남정네들 먹먹한 허기 달래주고 싶은지 매미 태.. 시 2018.09.02
왕후박나무 밑 아침을 여는 책향시 739 왕후박나무 밑 노천 유료 주차장 거대한 왕후박 한그루 늘 푸른 영역 아래에 땡볕 피하는 자동차들 가끔 새똥으로 칠갑을 하지만 트렁크 위에도 본네트 위에도 유전자를 듬뿍 담은 검붉은 씨앗이 여럿 떨어져 있다 게으른 운전자, 장거리를 다녀오면 그대로 있기.. 시 2018.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