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삶기 국수삶기 뙤약볕 아래 마당귀 내다 건 양은솥에 보릿짚 따닥따닥 거리며 국수를 삶고 시커먼 부시깽이 연신 솥안을 젖는다 뻣뻣함 대쪽 같아 아기 다루듯 한 치 앞도 모를 결백만으로 장수를 손 모아 빈 가지런함도 바람의 무두질에 흔들리는 여름 어긋남 헝크러짐 모로 살아도 옳바로 .. 시 2019.08.04
꽃 목욕 꽃 목욕 삶의 기슭에 바람이 많았다 벼랑을 오르는 꽃을 바쳐든 리프트로 오르는 이동 목욕차 슬몃 보금자리 벗어난 고뇌가 휠체어 덮은 모포에 유별스레 하얗다 먹먹한 가슴에 목련잎 떨어진다 좀처럼 놓지 못한 이승의 시간들 물을 맞은 꽃들처럼 활짝 웃는 약효로 견디는지 정신줄 놓.. 시 2019.07.25
어머니의 수건 어머니의 수건 땀내 흠뻑 절은 수건은 하천부지 한 뼘 늘리던 어머니의 모자였지 우물물 나를 때는 똬리로 한몫을 자갈들 아우성 같던 보풀도 다 닳아 앙상한 뼈만 남아도 그늘밑 방석되기도 저녁답 부엌앞에서 온몸을 탈탈 털었다 얼레에 알알이 걸린 시름도 행복인 걸 염천에 흘린 땀 .. 시 2019.07.24
조도(鳥島) 조도(鳥島) 외로움에 마음 절인 삽짝 앞 은물결에 유폐의 멍에를 벗은 달빛 고적함 담아 미조항 십리길 간신히 버텨냈다 함부로 끝이라고 우기지 마라 창파에 마음 씻고 조신하고 살았다 부리가 오뚝하니 여지껏 날개 짓 윤슬이 사이좋게 속삭이다 울다 지치고 저 새, 이우는 달빛 베고 누.. 시 2019.07.20
방동사니2 방동사니2 묵정밭 분별없이 너른 들 달려오고 부르튼 맨발로도 언 땅을 짚고서 미끈한 삼각줄기 대(竹)의 절개 흉내인가 줄지어 선 나락 사이 훑어가는 여름 뿌리내린 토박이 몇 번의 제초제로 논주인 으름장에도 고개 빳빳하다 그라목손보다 질긴 섬유질 삼각편대 도열병 신발끈 매니 머.. 시 2019.07.19
늙은 가방 늙은 가방 과거가 멈춘 손때 절은 손잡이 잡다한 물건 속 새근새근 잠잔다 속은 게워낸 채 세월만 안고 쉽게 버리지 못하여 색은 바랬다 틀니 같은 지퍼 조악한 입을 다물고 기다란 어께 끈 무게중심 잡았다 첫 출근 기쁨을 함께한 봄바람 어디가고 퇴근길 그림자는 더 길어졌다 먼지 쌓인.. 시 2019.07.18
이태리타월 이태리타올 앙상한 뼈마디마다 질곡만 남았는데 마지막 물기가 도는 이 쥐어 짜인 삶 사위어 가는 볼 위에 눈물이 흐르네요 세상에 순치란 모를 것 같던 두 선만큼 선명하던 패기 보풀이 일 때까지 올올이 새겼을 까칠함 세상의 때를 벗기고 나서야 순응의 편안함에 돋아난 붉은 궤적들 .. 시 2019.07.17
서포의 말 서포*의 말 바다위 줄금 그리며 달려온 바람의 호출에 아픈 달이 댓잎 사이에서 흐느끼고 가슴멍 물든 하늘에 손편지 띄운다 밤마다 가슴속 서성이는 당신은 너무 멀고 땀땀이 피로 쓴 운문체 시공을 뛰어넘어 사무친 이네 맘 어머니의 보공이라도 내몸은 애달픈 별리, 쉬 눕지 못하는 위.. 시 2019.06.23
꽃무릇 오르다 꽃무릇 오르다 막차 탄 봄볕 마른기침 소리나는 깊섶에 어찌 참있나 거리를 엿보듯 오똑한 꽃대하나 설레발 꽃샘추위에 정수리가 붉어졌다 쥐었던 손을 펴려니 관절염같은 돌턱에도 수줍게 눈이 달린 손으로 온몸을 데우는 햇빛 몇 줌이 보낸 강열한 절창에 앙다문 알몸으로 봄비에 순결.. 시 2019.06.21
선원사지 선원사지(禪院寺址)* 가을빛 손때 절은 목판을 찾는다 금당자리 숨어든 문자 열 깊고 잠자는 심초석에 가을 햇살 고여 있다 낙엽이 계면조로 지며 종경록 읊으니 예스리 숫돌이 익숙한 판각칼을 찾고 떨어진 숫물자리마다 허리가 굽었다 문자공 들숨과 날숨 사이 잊혀진 기억들 들춰낼 시.. 시 2019.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