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전야 내일 아이들이 소풍을 간다는데 용돈을 못 준다 누가 술집에서 나를 부른다 훤칠한 미인들이 즐비한 술집 어둠이 부끄러움을 막아주는 시간 풍만한 가슴에 퍼런 뭉텅이 돈을 찔러주는 사람에게 아이들 용돈을 좀 줄 수 없냐고 말하려다 용기 없는 나는 미인의 가슴만 구경했다 아이들 들.. 시 2015.03.21
팔려간 송아지 팔려간 송아지 꽃피던 봄날 마른 논 길 질러 아버지 따라 십 여 리 현풍 시장에 어미 소 몰고 나서니 송아지 영문도 모르고 따라 나선다 태어나던 몇 달 전 외양간 앞에 어머니가 개다리소반에 우물물 한 그릇 올려 두고 빌었던, 가끔 야밤에 큰 된장독 핥 던 그 송아지 아버지가 돈을 세서.. 시 2014.06.03
화방사 앞 약수터 화방사에 물 뜨러 가니 벌건 대낮에 알몸으로 목욕하는 놈이 있네 튼실한 갈색 이두박근에 빵빵한 엉덩이 어디서 굴러 온 무례한 놈이지 모든 것을 부처님 가피로 용서하려는 찰나 소나무 사이 햇살 타고 온 다람쥐가 잽싸게 물고 가네. 시 2014.01.11
수제비 수제비 서울사람들이 강남 평당 몇 천만원 짜리 아파트 늘릴 때 한 여름 땡볕 아래서 어머니가 삼베 적삼 다 젖도록 쇠깔쿠리로 내 머리통만한 자갈 들어내며 수제비만 한 하천부지 한 뜸 한 뜸 늘리듯 밥상 위에서 겨우 민 미공법 480조의 질긴 밀가루 반죽이 어느 날 홍수에 흔적도 없이 .. 시 2013.12.29
옮음 책향시 184 옮음 삼치가 연탄불 위에서 거드름 피우며 가랑이 쩍 벌리고 배시시 웃는 집 맞은 편 서울 피카디리 극장 앞 1000원짜리 국밥집엔 늘 장단 맞추는 깍두기에 정부미가 나풀나풀 춤을 췄다 저마다 허기를 채우는 법을 뜨거운 국밥에서 건데기 건지는 법을 피덩이에게 배웠지만 먹.. 시 2013.12.28
두 노량 사이* 늘 마주보며 서로 얼굴 들여다보는 일 바다 물결에 서로 맞추고 남해대교 카데타로 민얼굴 보며 상견례하고 혼수 맞추는 사이 *서로 마주보는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와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를 말함. 남해대교로 연결되어 있음. 시 2013.06.04
이시카와 다쿠보쿠 단상 이시카와 다쿠보쿠 단상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1886~1912)는 일본의 유명 가인(歌人)이다. 일찍이 사회 사상에 눈 뜨고, 생활 감정을 풍부하게 담은 시로, 일본에서 '국민시인'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시인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강제 합병한 국치의 날에 이런 시를 남겼다. 지.. 책향의 세상읽기 2013.01.25
의신골 벌 의신골 벌 위사진: 찻잔에 붙은 벌 모습.<새롬복지 한양숙 촬영.2011.9.24> 의신골을 지나다 토종벌꿀차로 목을 축이니 내밥 내놔라고 야박하게 벌침으로 위협한다 자기밥 뺏어 먹는다고 웽웽대며 내밥 내놔라 한다 의신골 벌은 이기주의자다 생활력이 강하다. *의신골: 하동군 화개면 .. 시 2011.09.24
병뚜껑 병뚜껑 꼭대기 좁은 세상에서 세상을 내려다 봤지만 몸이 찢어져야만 해탈하고 짓 이겨진 채 내버려진다 정상에서 고귀하였지만 쓰레기장에서는 마지막에 납작하게 업드린다 작지만 큰 역할로 왕관마저 내놓고 알아주지 않은 설움 혼자 삭이며 자의반 타의반으로 물러난다. 시 2011.03.05
이끼 이끼 돌 등어리에 붙어 초록빛 내는 건 꼭 빈대떡 같지만 나처럼 세상에 좋은 일 한번 한 적 없으면서 무주공산인 세상에 빌붙어 살아왔다 강인한 접착력으로 조그마한 진리의 끈을 부여잡고 오늘도 부벼대며 세상의 탐욕 달관하며 돌에 낀 때로 때론 바람도 맞고 토한 술 자국에도 화려한 화초가 아.. 시 2011.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