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뒷짐 진 노을을 보고 있노라면 억겁을 지난 큰 바위도 이제 막 돋은 참나리 싹도 소나기 지난 흙냄새도 벗이다 마음을 훌훌 벗은 이승의 찰나 질척인 삶을 헤쳐와도 아직 숨이 가쁜 이 순간을 살피고 또 살피려 식기 전의 너를 잡았다. 시 2015.08.12
닭똥집 골마 고거 결국 군부러졌다 거친 무게들이 근육질 빈틈을 채우자 한 때 그걸 두들겼던 억센 역발상들 결코 두 개가 아닌 쫄깃한 보라색 근육질 뒤집힌 샛노란 부리 터지고 갈라져 위를 향하는 샌드백 다신 엎어지지 말고 튀겨지지 마 내 인생처럼. 시 2015.08.10
하늘수박 하늘수박 봉놋방에 발 들인지 며칠 오롯한 풍경 추렴한 바람에 소리 없이 야위었다 죽어서도 한 뼘 누울 자리 없어 풀먹인 호청같은 날 세운 땡볕 타고 하늘을 건 미등기 전셋방 포도시 확정일자 받았네. 2015.7.23 14;13 남해상주에서 시 2015.07.23
어떤 해탈 뜨겁게 염불하는 삼계탕 뚝배기에 가부좌 튼 목 없는 부처 막장에 찍은 청양 고추 하나 베어 물고 신라 시대 복장 유물 뒤지고 천전리 암벽화에 나올 뜨거운 인삼 한 뿌리 순장 여인의 복숭뼈 같은 깨진 와당 하나 붉은 대추뿐 보라, 저 속을 비운 해탈을. 시 2015.07.16
쌀독 한때 어머니가 깨끔발로 엎드려 바닥을 바가지로 긁던 소리가 살가운 저녁 무렵 허기는 어김없이 짚연기로 타올랐다. 늙은 감나무가 졸고 있던 그 헛간 자리 이제 금간 몸을 철사로 깁스한 채 입도 못 다물고 반쯤 빗물로 찬 쌀독. 시 2015.07.13
절여짐 방어기전으로 알싸한 콧날 세우던 마늘은 겉옷 벗은 편도승차권 간장에 스르르 범접을 허용 마실에 어둠이 깔리듯 여북하랴 저려지는지도 모르게 부처님 말씀이 스며들었으면 시 2015.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