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마늘 봄이면 남해는 짙푸른 마늘향이 집집마다 일렁인다 바다도 논도 동색으로 난지형 마늘은 제값을 한다 넉넉한 햇살 받아 땅 속에서 하얀 처녀 속살같은 쌍둥이들의 이두박근 해풍에 얻어맞고도 멍들지 않고 대지의 기를 다 모은 결정체가 은둔으로 기르는 내공 그래서 종을 잘리고도 아.. 시 2009.09.12
담쟁이 담쟁이 詩 김용엽(남해향토역사관 관장) <사진출처> 필자사진; 남해송정리 돌담과 담쟁이 작은 발톱으로 온몸을 이고 속세 살 수 없다며 등 터진 노송 껍질 사이를 기어오른다 수천 부하를 거느린 여린 앞잡이는 아프리카 들개 대장처럼 그 외진 곳을 타는 갈증으로 잘도 넓혀가는 땅 한 줌 아파트.. 시 2009.09.09
전어 온몸에 기름 묻은 전대를 차고 전어는 선소항 어귀에 와불처럼 모로 누워있다 가을을 읽고서 달관한 체 허공 바라보며 헐떡이니 요동치는 선혈 아가미와 담낭 움츠리는 아직 여린 몸으로 부끄러워 살구 빛 처녀 살 감추려고 제 뼈다귀보다 많은 역경을 추억 한다 사정없는 무딘 정지칼에.. 시 2009.09.07
오카리나 소리 흙으로 빚은 옥음 왜왕의 마지막 옥음방송보다 미약하지만 작은 아지랑이 되어 인간 속살 어루만지니 심박 고동 우렁차게 하는 처연한 울음 달빛 속삭임으로 들려오는 영혼 품은 소리로 서늘한 가을밤 수놓은 정적 속의 고운 향기에 누른 벼 절로 고개 숙인다 꼭 물메기 눈만한 작은 구.. 시 2009.09.06
예취기(刈取機) 예취기(刈取機) 예취기는 힘이 세다. 3년 묵은 갈대도 길가 코스모스도 그와 만나면 넘어간다. 그 강력한 반동에 내뿜는 숨도 거칠다. 인해전술로 저항하는 잔디 잎사귀 잘려나가도 저항 한마디 없다. 왼팔이 아프면 오른팔로 잡아도 돌고 도는 방향은 일정하다. 불청객 자갈을 만나면 불같이 화를 내고.. 시 2009.09.04
코스모스 코스모스 詩 김용엽(남해향토역사관 관장) <사진출처 : 필자사진> 서늘함이 공간을 채우고도 남아 아스파라거스같은 잎새 사이에서 꼭꼭 숨어있다. 자동차 배기 속에서도 스스로 유복자 잉태하여 인생을 곡하면서 정분난 벌들 유혹에 이슬 맞으며 그래도 댕기머리 풀며 시계바늘 침으로 정조를 .. 시 2009.08.31
석류 알갱이들의 아우성에 그만 배가 터지고 벌어진 입에 빨간 루즈 묻었다 범접 허용 않던 가시돋힌 절개 고추 빻는 절구통 옆에서 대롱 긴 꽃 피우니 연신 인사하는 몸 무거운 임신부 달도 차기 전에 붉은 페인트 쏟아 부을 태세에 씨 다른 자식들 배속에서 종알 거린다 알고보니 놀라 도망.. 시 2009.08.30
가지 나락이 어른 키만큼 자라면 여름의 뙤약 빛 햇살에 잎사귀 그늘에서 은밀히 교접을 허용하고 자주색 온몸에서 혹이 돋아 꿈틀거린다 해당화 같은 슬픈 이야기 뭇사람에게 남기며 자투리땅에 가을바람이 찾아오면 두꺼운 외투 속의 연한 입술로 비아그라 먹은 실한 열매 소쿠리 옆에 끼.. 시 2009.08.30
고추잠자리 선혈이 낭자한 온몸은 너무 잔인하다. 더위 죽이는 고독한 살인마 그가 몰고 온 공포극 서늘함이 처마 끝에 달려있다 시든 고춧잎 사이에서 몰래 외도하며 익힌 붉은 열정 근접하기 힘들어 손이라도 대면 뜨거워 불쏘시개 마른 잎 불붙을까 노심초사 가을나그네의 부추김에 온몸 공중부.. 시 2009.08.27
삶 삶 -고 송유환씨 영전에- 나아가야 할 도정은 멀리 하늘로 닿아 있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땅 속으로 아픈 몸 둥글게 말아 납작하게 구부려 더 작아지기 위해 온 몸 낮추었다 네 눈물이 하늘을 향한다 말라버린 네 느린 삶이 몸살 앓다 어둠을 게워내고 있다 죽음처럼 몸이 아프다 햇살이 파도처럼 밀려.. 시 2009.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