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태잡이 동태잡이 머리가 지느러미가 잘려 나가고 애간장 타는 순간 모로 누워서 북양을 그리며 흑막이 걷어졌다 걸어온 발자국에 죄 없는 부관참시 내력이 제거돼도 신음도 못하고 토막이 난들 꿈은 아직도 남았다 창랑(滄浪)에 울림 남겨 본 적 없고 남들에게 한번도 좋은 일 한 적 없는 서늘한 기억이 얼큰한 유언으로. 시 2021.09.05
비 온 후 비 온 후 비 온 후 아스팔트 위를 힘차게 지렁이 제 갈 길 앞으로 달려간다 스스로 아직은 괜찮다는 위로에 온몸이 마뜩잖은 바람을 만나고 왕개미 줄 서도 순응한 오체투지 득도한 세상에 긴 여운 끔틀거린다. 시 2021.09.03
9월 9월 푸른 정맥 새순이 생경하다 결기를 세우다 설레발 꽃잎 지고 덜 야문 몸으로 숨을 헐떡이다가 이때다 싶다 하릴없던 그 시절 내 서재 하얀 종이가 바래도록 게을러 읽지도 못한 채 낡은 책. 시 2021.08.29
모교 모교 대니산 어귀에 잠자던 폐교 하나 못골에서 비둘기 소리 구석구석 잘려진 포플러 나이테 선명하다 잡초가 우거진 운동장 흩어진 잔별들 강아지풀 얼굴 부비고 소리못 잔잔하고 마른 기침같은 여운 긴 풍금소리 아직도 꿈을 꾸는 향나무 뒤로하고 경첩만 남은 부처같은 교문에 운동회 어머니 부르는 소리 걸렸다. 시 2021.08.26
고목의 독백 고목의 독백 십 년도 넘게 짝사랑했었지 고백은 커녕 혀에 마뜩지 못해 건조한 목소리에 몸에는 좀이 슬고 오롯이 널을 뛰는 햇살은 되려 야물딱진 교훈을 주지만 가슴엔 피가 흥건하다 색바랜 낙엽들이 끝났다며 앙기는 날에 잊혀지기 힘든 이름 석자 오지다 혼자만의 명분으로 혓바닥에 척 감기는 일 일뿐 노을에 모로 누워 흔들리며. 시 2021.08.23
곡포보성2 곡포보성2* 그 기상 500년 장대(將臺)에 머물지만 오래된 우물이 왜놈의 양조장이었다니 요해지(要害地) 곡창(穀倉)이 혀를 차고 호구산 기슭 세운선 오간 굴강 잠들고 무너진 성벽 안 느티나무 창을 드니 귓전에 병졸(兵卒)들 함성 푸른 파도 철석인다. *남해군 이동면 앵강만에 있는 성. 시 2021.08.22
꽃밭 소묘 꽃밭 소묘 봉숭아 기여이 살점이 떨어진다 채송화 낮은 자세 분꽃 야물딱지다 울담에 줄장미 오롯이 널을 뛴다 혈색이 좋지 않아 발등에 삶을 접은 은은한 조화로움 눈여겨 보지 않아도 오히려 대견한 맨드라마 벼슬 비루먹은 장닭 족제비가 노리니 번뇌도 있으니 보리가 있겠지. 차례로 지는 살점들 인생 닮았다. 시 2021.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