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 소묘 꽃밭 소묘 봉숭아 기여이 살점이 떨어진다 채송화 낮은 자세 분꽃 야물딱지다 줄장미 오롯이 널을 뛴다 오히려 대견한 맨드라마 벼슬 타작 먼지에 비루먹은 장닭 족제비 번뇌도 있으니 보리가 있겠지. 시 2021.08.17
가로수 하나 가로수 하나 비포장 도로 옆에 창공을 움켜쥐고 전쟁통에 총알박이로 살아남고 태풍에 가지 몇 개 찢어지는 아픔 연륜에 몸통 커다란 골다공증 휑하니 길가의 정착민으로 뿌리내린 붙박이들 시퍼런 손바닥 아직 바람에 그네 타지만 한평생 말없이 야물딱지게 살아도 비루먹은 도로 확장에 정리해고 통지 같은 선연한 기계톱 소리 그참 요란하다. 시 2021.08.10
파적(破寂) 9 파적(破寂) 9 어머니 밭에서 돌아와 두건으로 온몸을 탈탈 턴지도 어제 일 고요한 정지 쌍희자 대접도 누웠다 이빨빠진 간장종지 몸을 움츠리고 가마솥 무게를 한참 잡았다 아궁이 식으니 고요가 배부르다 부스스 동이 터고 나무꾼 부르는 소리에 살강 위 주발 깨지는 소리 쥐새끼 한 마리 급하게 은신하며. 시 2021.08.09
파적(破寂) 8 파적(破寂) 8 무쇠도 녹일 듯 정수리 붉은 불빛에 한여름 닭들도 감나무 밑에서 졸고 바지랑대 그림자 오므라 들었다 멀리서 진주행 버스 달려오고 먼지를 이고 정적을 먹고 있다 나무 대문에 큰 자갈 힘껏 던지고. 시 2021.08.09
솟대 솟대 바닷가 멀리서 온 동창생들을 입가벼운 친구가 다 안다는 듯 척 보면 독신인지 신용불량자인지 큰일을 접해야 인간이 된다네 굳이 간경화 감추며 복수가 차야 하는지 술 한잔에 고요한 주위 목소리 크다 사람들 허물을 오리 눈 지켜본다 세상의 업경대에 우뚝 서서 한 점의 좌표에서 울리는 큰 새소리. 시 2021.08.07
대웅전 앞 수국 대웅전 앞 수국 무거운 조선 기와 지붕 그림자가 시간을 늘리고 화엄경을 읽은 잉크빛 부드러움으로 불공을 드린다 햇빛의 재잘거림 바람도 언짢아도 음덕에 화답하고 미소를 뽑았다 삽살이 손끝에 암향 그윽하다 동안거 지나가고 품은 봄도 지나니 몽실한 자태로 음유하는 자서전 사라진 독경소리 쓰고 또 쓰고. 시 2021.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