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온 몸을 실어도 가장 가벼운 깃털 몸통은 지하 어두운 곳에 두고 흔적도 없이 바람에 실려 간다 밟혀도 꿈쩍 않는 인내력으로 내일을 기약하는 뿌리 깊은 집안. 시 2010.08.03
방게 한 마리 조개들 가벼움으로 여름이 불타는 밤 달궈진 석쇠 위에서 배시시 몸 달구는 조개들 그 사이 꼬막은 막춤 추고 바지락은 치마 자락 여밀고 피조개는 생리하며 새조개가 혀 깨문다 몸집 좋은 전복은 두꺼운 방탄복 속에서 점잖은 척 가리비 부채 뒤로 몸 사리는 노을과 함께하는 벌거벗은 .. 시 2010.08.02
해바라기 해바라기 하늘을 향한 열정이 벌집 마냥 무수하다 혼자보단 합친 힘으로 외줄기로 솟구치는 욕구 해를 닮으려다 입은 열상(裂傷) 만큼 목마름이 큰 키 되어 푸른 바탕에 샛노란 물감 얻어 이빨 들어내고 웃는다. 2010.08.01 16:44 남해 시 2010.08.01
바람 바람 나락단 쌓인 들판에서 흙벽 사이로 나와 찢어진 문풍지 울리며 손가락 붙던 문고리 들썩이고 대문간 양재기는 밤새 요란하다 쥐약 먹은 어미 개 거품 물고 죽어있던 그날 밤 소리 없는 소도둑 지나간 흔적 움막집 봉창에 스며드는 달빛 길손이 그림자처럼 추녀 밑에 옷깃여미고 밤을 새우는 겨울 .. 시 2010.07.28
참호래기 참호래기 선술집에서 접시 위 참호래기가 인해전술로 덤빈다 어떠 영문인지 갈색 투구입고 먹물 뿌리니 가방끈은 길지만 어물전 망신이다 뼈대있는 가문의 곳간처럼 배속엔 쌀밥이 가득 안 아픈 열 손가락이 없다기에 고이 접어 통째로 먹물도 쌀밥도 함께 먹는다. *필자주: 호래기는 일반적으로 오.. 시 2010.07.28
그리움 그리움 술로 말끔히 씻어 낼 줄 알았다 커피 한잔으로 달래질 줄 알았다 천하장사 같은 힘으로 짓눌린 가슴 한 구석에서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지워도 지워도 잘도 살아난 넌 참 질긴 삶을 구석진 곳에서 잘도 살고 있다 강한 내성을 지닌 넌 그라목손도 이긴 칡넝쿨만큼 강하지만 서걱이는 갈대숲에서 .. 시 2010.07.11
범종(梵鐘) 범종(梵鐘) 본성(本性)은 금강(金剛)을 보전하고 몸은 전륜(轉輪)을 본받는다 소리를 들으면 마음을 깨닫고, 꽃이 피면 과실이 맺히리라 천년만년 꽃다운 얼굴 보여주겠다고 누군가 금속으로 나를 키워놓았네만 그 흘린 땀이나 거푸집 조각칼이 돋움으로 비천(飛天)을 만들고 구름을 만들고, 명문(銘文.. 시 2010.05.23
서포초옥 서포초옥 바다 바람이 올라오니 초가지붕이 들석인다 좁은 입구의 동백 숨결도 잠재우니 때로는 너울에 잠긴 듯하다 다듬어진 주춧돌이 여실히 들어나고 밧줄로 동여맨 지붕이 흰 이빨을 드러내고 정객의 토막 난 상처가 그 자리에 묻어난 대패 자국이 상처 난 병든 몸을 어루 만진다 몸 깊은 생채기.. 시 2010.05.22
제비 제비집 단단한 콘크리트 처마에 친환경 집을 신축했다 강남에서 신혼여행 온 두 내외 부지런히 지푸라기 물어다 침대 만들고 연미복 입고 집주인에게 다정하게 지저귀고 있다 주민등록은 애기 낳고 하고 전세 등기도 필요없다지만 배설물 떨어질까 받침 붙여 준다. 2010.05.19 05:43 남해 시 2010.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