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적(破寂) 8 파적(破寂) 8 무쇠도 녹일 듯 정수리 붉은 불빛에 한여름 닭들도 감나무 밑에서 졸고 바지랑대 그림자 오므라 들었다 멀리서 진주행 버스 달려오고 먼지를 이고 정적을 먹고 있다 나무 대문에 큰 자갈 힘껏 던지고. 시 2021.08.09
솟대 솟대 바닷가 멀리서 온 동창생들을 입가벼운 친구가 다 안다는 듯 척 보면 독신인지 신용불량자인지 큰일을 접해야 인간이 된다네 굳이 간경화 감추며 복수가 차야 하는지 술 한잔에 고요한 주위 목소리 크다 사람들 허물을 오리 눈 지켜본다 세상의 업경대에 우뚝 서서 한 점의 좌표에서 울리는 큰 새소리. 시 2021.08.07
대웅전 앞 수국 대웅전 앞 수국 무거운 조선 기와 지붕 그림자가 시간을 늘리고 화엄경을 읽은 잉크빛 부드러움으로 불공을 드린다 햇빛의 재잘거림 바람도 언짢아도 음덕에 화답하고 미소를 뽑았다 삽살이 손끝에 암향 그윽하다 동안거 지나가고 품은 봄도 지나니 몽실한 자태로 음유하는 자서전 사라진 독경소리 쓰고 또 쓰고. 시 2021.07.24
미역국 미역국 하릴없이 간 그곳 콘크리트 바닥에 갈라진 틈 사이로 벌레들 아랑곳 않고 정맥이 푸른 팔뚝 뜨거운 햇빛에 소금을 토한다 거센 풍랑에도 머리 풀어 헤치고 움켜잡은 실한 옥수수 뿌리로 창포물 감은 듯 미끈한 부동의 시간 고향의 물질 사이로 가물거리는 기억을 되새김 하며 외치는 자식들 이름 환생한 온몸으로 외치는 맛으로 내는 소리. 시 2021.07.22
H여인에게 H여인에게 원두커피라도 씹어 보면 씁쓸한지 금방 긇인 건지 가루라도 남겼는지 삼키다 곱씹을 건지 그냥 넘길 건지 쓸수록 마음이 부족하고 개미가 없어 표현력 부끄럽기 짝이 없네 언젠가 원두 대신 수제맥주도 좋아 맛있는 커피는 차지게 윤기가 있네 밤새 뒤척이며 안달하다가 거위의 배를 가르듯 뿌리째 뽑아 마음이 죽 끊듯 딴지 거는 날에 베란다 사운이는 달빛 어루 만지며 가녀린 시심 피토하며 그윽한 범종소리 씹었지. 시 2021.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