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 감꽃 탱자나무 반쯤 걸린 비닐봉투 울던 날 살집이 두꺼운 제비는 경전 외듯 보리도 패기 전 그 고갯가 핀 허기 온통 초록으로 버무려진 떫은 밭 벌 나비 없어도 곡기가 부른다 살색 여린 몸피 아침햇살에 눈시리다 짚으로 엮이어 견디어 온 시간들 단물도 버리고 휑한 가슴이지만 아직도 별처럼 총총한 그 사랑. 시 2021.03.16
물메기국2 물메기국2 앵강만 내외하며 해금질하는 사이 표층수 조용히 내밀하던 바다 속 작은 눈 큰 입으로 물컹한 물메기 주모가 닭 잡듯 내리친 물메기국 시름이 다 풀린 우윳빛 사연으로 말하는 사랑 나에게도 있었지. 시 2021.03.15
개나리 말문 개나리 말문 겨우내 앙상한 가지 사이로 찬바람 흘려 보내더니 누군가 그녀의 말문을 트게 했다 동토에서 온 엄장이 큰 그들 완력도 무위로만 그치더니 비오고 미풍에 그만 댕기 풀었다 노란 적삼 입은 제비부리 지나는 나그네에 팔벌리고 말건다 나지막한 목소리 안부를. 시 2021.03.01
석탑 석탑 석양속 서까래도 도드라진 지난 세월 이고 혈색 마냥 돌이끼 선명한 옥개석 끝없는 중생들의 아우성 사리공에 쟁이며 영겁으로 은은한 독경 앙화문에 깃든 향. 시 2021.02.04
피조개 피조개 여러 번의 질풍과 가뭄도 이겨낸 주름진 연륜은 속박일까 본성이 꿈틀대고 껍질이 말한다 틈새를 노리고 멀리 달려와 가슴에서 피를 흘리며 갇힌 삶에서 새 삶을 노린다. 시 2020.11.03
곡포보성(曲浦堡城) 곡포보성(曲浦堡城) 허물어진 낮은 성벽이 쌓아온 제 나이 오백년에 제 몸을 낮추고 술도가 자리 우물이 한 숨을 쉰다 심드렁 요해지 귀에 젖은 함성 볕바른 성내 아무데도 없는 눈길 보성의 느티나무 우듬지가 환하다 우직한 시간 속 그늘 깊은 나무 밑 까무룩 말이 없는 구절초 핀 굴강 짭조름한 해풍에 오백년도 저무네. 시 2020.11.02
지푸라기 지푸라기 한여름 마음이 바빴다 푸른 줄기 세우고 양식을 매달고 인중이 넓었고 포만감을 주었다 석양에 모로 누워 앙상한 골육 어려울 때만 찾는 내가 아닌 날 찾지 않은 때가 그립다. 시 2020.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