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제비집 단단한 콘크리트 처마에 친환경 집을 신축했다 강남에서 신혼여행 온 두 내외 부지런히 지푸라기 물어다 침대 만들고 연미복 입고 집주인에게 다정하게 지저귀고 있다 주민등록은 애기 낳고 하고 전세 등기도 필요없다지만 배설물 떨어질까 받침 붙여 준다. 2010.05.19 05:43 남해 시 2010.05.19
남해시장 앞 이팝나무 검은색 차위에 송홧가루 쌓이는 날 남해시장 앞 이팝나무는 일렁이는 초여름 바람으로 모닥불 피워 모락모락 밥을 짓고 있다 혼자 지은 밥을 아스팔트 위에 동제 지내는 날 밥무덤 같이 뿌리고 보릿고개 지낸 허기 진 배 채우라는 이타심 오지랖 넓은 이팝나무는 욕심으로 가득 찬 인간.. 시 2010.05.18
할미꽃 세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꽃이 봄바람 만나 매무새 만지고 있다 갓 피어난 꽃에 하얀 배내털이 보송보송 한데 벌써 할미다 다소곳이 자태 고치고도 세상 보기 두려워 고개 못 든다 할미는 양지바른 산 속 양로원에 혼자 산다. 시 2010.05.05
남해 금산 찔레꽃 미안해요 비단 이불에 오줌을 눠서 구중궁궐 고운 이불에 볼품없이 아무데서나 엉거주춤 알리지도 않고 피어났고 조용히 떠납니다 천하게 태어났지만 비단보에서 떠나는 난 분명 왕손이 틀림없지요. 시 2010.05.04
철쭉은 철쭉은 뱀이 겨울 잠 자듯 서로 부둥켜 안고 고난을 나눈 가지 봄비에 간지럼 태우는 햇빛에 그만 이기지 못하고 선홍빛 춘정을 토한다 움트기로 우주를 헤치는 혼자만의 뱀독 오른 외침이 온 산을 물들이지만 그래도 잡지 못한 봄바람을 못내 아쉬워한다. 2010.05.04 15:17 남해 시 2010.05.04
방앗간 냄새 매일 오가는 버스정류장 옆에는 오래된 방앗간이 있다 먼지와 함께 날려 나오던 딩기는 보이지 않고 딩기냄새는 자욱하다 아버지 냄새 같다. *딩기는 등겨를 이르는 경상도 사투리. 왕겨라는 말도 있습니다. 시 2010.04.29
때 묻은 문지방 씻은 물을 마시고 때 묻은 문지방 씻은 물을 마시고 옛날 방문에는 언제부턴가 시커면 삶의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씻어도 씻기지 않을 만큼 단단한 접착력을 자랑한 시커먼 때 자국이 감기 몸살로 쓰러진 아이에게 약물로 쓰려고 미는 어머니 손에 마냥 속살은 돋아났다. 아무 말 없이 몇 십 년을 눌러 붙은 세월.. 시 2010.04.29
어떤 희생 감자 싹이 육중한 몸에서 길트기를 한다 힘들어 하는 여린 싹을 유도 분만하려니 공기를 가로지르며 비명을 지른다 온 몸을 제왕절개하여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새싹이 공기를 호흡하며 세상을 움켜쥐고 큰 몸둥아리를 거름으로 삼는다 부모들처럼 아무 말 없이 사라지듯 큰 태동에 썩어.. 시 2010.04.27
유채꽃 유채꽃 잊은 듯 떠난 임의 환상 노란 적삼 입고 문 앞에 서서 엄동설한 찬바람에 죽은 듯 몸 낮추더니 봄기운 맞아 청상입고 새색시 시집간다 단체로 일군 봄잔치에 마냥 즐거운 들러리 개나리, 철쭉, 목련 술취한 하객 튤립 불청객 꽃샘에 몸가누기 힘들다. 2010.04.27 11:38 남해 시 2010.04.27
복숭아 범접하는 손 거부하는 가시 같은 털에 가려진 몸속에서 감춰진 벌레가 기어 나오고 혼자만이 살아가는 무릉도원 무참히 집을 부순 철거반원 탐욕의 이빨에 집을 잃는 서러움으로 온몸으로 저항 입이 훨씬 큰 내가 저걸 먹으면 이쁘질까 방정맞은 엉덩이 내밀며 잎사귀에 가려 살며시 유.. 시 2010.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