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 겨울 내내 웅크려 있던 저놈이 삭정이 같은 가지마다 머리 기름 바르고 향수뿌리고 저놈이 기어코 일을 냈다 3년 묵은 적금 깨더니 남편 일 간 사이 원색 옷에 가방 매게 하더니 음악 소리 요란한 관광버스 타라네 슬그머니 충동질하는 본능에 충실한 저 고약한 손길 젊은 놈의 유혹에 이.. 시 2015.03.22
소풍전야 내일 아이들이 소풍을 간다는데 용돈을 못 준다 누가 술집에서 나를 부른다 훤칠한 미인들이 즐비한 술집 어둠이 부끄러움을 막아주는 시간 풍만한 가슴에 퍼런 뭉텅이 돈을 찔러주는 사람에게 아이들 용돈을 좀 줄 수 없냐고 말하려다 용기 없는 나는 미인의 가슴만 구경했다 아이들 들.. 시 2015.03.21
낡은 구두 동창회 갔다 온 구두 밑바닥이 달그락 거린다 고향의 해 저문 신작로가 통째 묻어 있다 진주행 버스가 포플라 나무사이로 흰 먼지 날리며 가끔 나무 대문에 돌멩이를 던지던 소리 겨우 손바닥만 한 학교 운동장만 밟고 솔례마을 길을 걸었을 뿐인데 귀도 없는 구두가 소리를 어떻게 품었.. 시 2015.03.21
길고양이 두어 마리 색색의 길고양이 두어 마리가 물컹한 풍경소리 들리는 슬레이트 지붕위에서 노곤한 봄잠을 즐기고 있다 간밤에 겨우 탁발한 시뻘건 탐욕이 몸에 배인 입술 주위 비린내를 닦고 묵언 수행 중 냅다 던진 신발짝에 깜짝 놀라 야근하며 집어 삼킨 달빛 꽃이 지는 소리 모두 안고 전단지 몇 장.. 시 2015.03.20
닳은 숟가락 하나 도로 넓힌다고 찢겨 나간 옛집 저기, 서녘 노을 모은 붉은 단풍나무 한그루 남아 아직도 그네 타는 다홍 이파리 어머니가 조청 솥바닥 긁던 반쯤 닳은 놋숟가락 하나. 시 2015.03.19
떨어지는 팝콘 벌거벗은 낱알들 한 시절 지나고 속옷 뒤집어쓰고 나왔다 참 따숩은 길가에 곰삭은 고목들 사이 못 튀어 나온 탁자에서 가방 속 피쳐 하나를 꺼내 일회용 컵에 따르니 홀로 봄바람 난 오롯이 연분홍 속살 같은 한 웅큼 팝콘이 떨어지네 안주 대신 잡힐 듯 말 듯 한 꽃술 아버지 막걸리 잔.. 시 2015.03.19
양파싹 바람소리도 무심한 베란다 구석에서 흰뿌리로 허공에 자맥질하며 색 바랜 양파망을 받들고 있다 한 계절을 무던히 견딘 겹겹의 웅크린 제 어미 몸 파먹고 기어코 시퍼런 목숨 같은 한 줄기 피워내고야 말았다 익은 햇빛에 장미가 방충망 여는 사이 물 한 모금, 비료 한 줌 없어도 그 넓은 .. 시 2015.03.17
산수유 조락한 성황당 옆 핏기 없는 대들보에 재잘 재잘 모이 달라는 노랑부리 매달렸다 겨울이 지나간 상흔마다 땅속 노란색 다 모으고도 섧게 노란 저고리 여미는 아직 배고픈 저 봄. 시 2015.03.17
금연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된다고, 파업으로 연기 나지 않는 공장의 굴뚝들아 어두운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고 벽이나 보고 고함이나 지를 것인가 출근길 목련은 옹알이 중인데 뜨거운 물 뒤집어 쓴 봉다리 커피야, 횟집 수조 안 물고기들아, 컴퓨터 자판마다 달라붙는 어둠들아, 푸른 멍든 바.. 시 2015.03.15
초봄 풍경 눈비비는 실버들 가지에 몽우리 진 산수유 노란 입술 깨무는 개나리 묘지 옆 졸고 있는 할미꽃 연못에 비춰진 몸매 보고 배시시 웃는 벚꽃 운동화 끈 다시 매는 바람난 개구리 노랑 적삼 입을 준비하는 유채 분홍속곳 꺼내 놓은 진달래 방금 목욕하고 귀밑 밝은 노루귀 물오른 가슴 터지.. 시 2015.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