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한 간무(桓武) 왕의 동생 사와라(早良)의 유배
간무(桓武. 737~842. 일본의 제50대 왕)은 헤이안교(平安京)로 천도하고 난 헤이안 시대의 초대 왕이다. 헤이안교는 794년 그가 나라(奈良)에서 수도를 이전하여 세운 도시로, 당나라의 장안성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계획도시이다.
이때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계속해서 일본 왕실이 자리 잡았고 문화·경제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현재도 일본 문화의 중심지이다.
간무는 정부 조직과 기능을 개선하려고 시도한 적극적인 왕이었다.
2001년 12월 23일 아키히토(明仁) 일본 국왕이 자신의 68세 생일을 맞아 기자회견에서 한일 양국의 인적, 문화적 교류의 중요성에 대하여 언급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는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기록된 것과 관련해 한국과 인연(因緣)을 느낀다.”고 말했다.
여기서 무령왕의 후손은 그의 어머니는 다카노노 니가키(高野新笠(たかののにいがさ)이다. 그의 자질을 간파한 후지와라 모모가와(藤原百川)의 책략에 의해 773년 왕태자가 되고 781년 45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784년 지금까지의 헤이조교(平城京)에서 야마시로(山背. 현재의 교토)로 천도를 단행했다. 이듬해 천도와 관련, 성 축조의 중심인물인 후지와라 다네츠구(藤原種継. 아래 참조)가 암살되고 왕태자인 친동생 사와라(早良. 다른 쪽 참조)가 폐위되고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근친들의 사망으로 지방 호족들의 반발을 누르고 그 지역을 헤이안교로 명명했다. 사와라는 후지와라의 암살에 연좌되어 무고를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아와지시마로 유배 가던 도중 단식하여 숨졌다.
조세나 출병 등에서 농민들의 부담을 줄이고 국가의 재력을 투입, 헤이안교의 완성과 귀족세력의 억제로 정국 전환에 성공했다. 805년 건의에 따라 이 사업을 마무리 하고 야마시로구니(山城国)에서 70세에 숨졌다.
승려로 도다이지에 거주 할 무렵 개산조인 로벤(良弁. 689~774. 일본 화엄경 승려)의 사후 처리에 승려로서 의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절의 대소사에 관해 늘 사와라에게 상담한 사실도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인해 연루의혹이 더 강하게 되었다.
후지와라가 중심으로 벌인 나가오카교(長岡京. 784~794년까지 일본의 수도 현재 교토 시내)의 조영 목적 중의 하나가 도다이지 등이 포함된 남부 지역의 조역에는 영향력이 없었다. 자신이 살던 도다이지 인근의 도시 조영은 사와라 친왕의 환도를 저지하기 위해 후지와라를 제거하려 했다는 의심이 있다.
간무(桓武)의 제1왕자인 아데(安殿) 친왕(후의 헤이제이<平城>왕. 774~824)이 발병하고 간무왕의 왕비 등의 병사와 사와라 어머니의 급사가 잇따르고 역병이 유행했다.
800년 스이도(崇道) 왕으로 추증되고 주신으로 신사에 모셔지고 야마토노구니(大和国)로 이장되었다.
후지와라의 암살 사건은 785년 천도 후 785년 9월 23일 밤 다네쓰구는 궁의 조영 감독으로 일하던 중 화살에 맞아 죽은 사건을 말한다. 간무왕이 야마토구니로 외출 중에 일어난 사건으로 암살범으로 다케라 쓰쿠라(大伴竹良)와 주범 10여명이 체포되고 참수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가오카교에서 헤이안교(平安京. 현재 교토 시의 중심부로 794년 결정된 일본의 수도로 1869년 메이지 정권에 의해 도쿄로 옮겨 갔다)로 단 시간 안에 환도할 수 없었다. 사와라 친왕의 원혼을 두려워 한 것이 사건 원인의 하나였다.
후지와라 암살 사건은 후지와라가 궁성 축조 중에 활에 맞아 다음 날 숨진 사건을 말한다. 간무 왕이 야마토구니에 간 사이에 일어난 사건으로 암살범으로 오토모 다케라(大伴竹良)가 먼저 체포되고 조사 끝에 10여명이 참수 된 사건.
이 사건 직전 사망한 오토모 야카모치(大伴家持. 718~785. 나라시대의 가인, 귀족)는 참모자로서 관적에서 제명되고 매장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의 아들은 오키노구니(隠岐国)로 유배되었다. 806년 사면 복권되었다.
이 사건은 간무 왕의 왕태자이던 사와라가 유배가다 죽은 사건으로 발전했지만 원래 후지와라와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 큰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후지와라는 사후 간무 왕에 의해 태정대신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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