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유배사.日本 島流し物語

수도자의 원조 엔노 오쓰노

책향1 2012. 2. 3. 10:49

수도자의 원조 엔노 오쓰노



엔노 오쓰노 (役小角.えん の おづの. 634~701)는 7세기 말 야마토(大和)의 가쓰라기산(葛城山. 현재 나라 현과 오사카 부에 걸쳐 있는 산) 산중에 수수께끼의 인물 엔 오쓰노가 있었다. 생몰연대가 미상이라 하나 분명하게 나와 있는 기록도 있다.

 엔노교자(役行者)란 별칭이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사물에 대한 생각이 깊었고 주술을 이용해  699년 긴부센(金峯山)과 가쓰라기산에 다리를 놓으려고 했지만 어려웠는데 히토고토누시(一言主)라는 땅 신이 사람 입을 빌려 “엔 오쓰노”는 왕을 멸망시키려 하고 있다”고 험담을 하고 제자인 가라구니노 무라지히로다리(韓国連広足)의 참언으로 화난 몬무(文武. 683~707. 일본의 42대 왕) 왕은 그를 잡아들이도록 했지만 주술을 사용하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의 어머니를 이용하는 바람에 붙잡혀 699년 이즈로 유배를 갔다.

불로 장생의 신선이 되기 위해 숲 속에 살며 곡물을 입에 대지 않고 솔잎과 민중을 식량으로 수행에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교 의술과 방술(方術)에 익숙한 수도자였다.

제자인 가라구니노 히로다리(韓国広足. 아래 참조)가 요술로서 사람들을 혹하게 하자 밀고되어 이즈로 유배 갔다. 야마토구니의 금봉산(金峰山)과 갈성산 사이에 다리를 놓고 귀신들에게 건너가기를 명령했는데 갈성산의 신이 어떤 사람에게 엔노가 왕을 망하게 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참언을 했다.

왕이 그를 잡으려 해도 신통력 때문에 어려워 대신 그의 어머니를 대신 인질로 잡았다. 어머니를 석방시키기 위해 자신이 유배를 갔다. 낮에는 이즈에서 밤에는 후지산을 올라 수행을 지속했는데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어 유배에서 풀렸다. 신선이 되어 날아다녔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중생 구제를 위한 기원에 출현했다고 한다.

낮에는 명령에 따라 이즈에 있었지만, 밤이 되면 후지산에 올라 수행을 하고 3년 세월이 흘러 결국 그는 사면을 받아 701년 되돌아오게 되었다.

나라시대의 종교가로 이름으로 수험도(修験道)의 개조가 되었다. 나라 출신으로 야마토구니(大和国)의 갈성산(葛城山)에서 수행하고 주술이 뛰어나 신선으로 알려졌다. 많은 전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고 신선 궁전에서 신선들과 교분을 갖고 심신을 기르는 영기를 받아들이는 기원으로 동굴 등에서 칡으로 몸을 두르고 솔잎을 먹고 맑은 물에서 목욕을 하여 세속의 더러움을 씻고 산림 속에서 수행을 했다.

그러나 그때는, 공작왕(孔雀王) 저주스런 종교를 수련하여 신선이 되어 하늘을 날게 되었다. 후일담에 대륙으로 건너 가 수백 마리의 호랑이 중에서 "독수리는 엔 고쓰노입니다"라는 소리를 한다든가 험담으로 히토고토누시는 지금도 포박 당한 채 저주하고 있다.

인간인 행자가 수행해서 선인이 되고 따라서 타국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호랑이 화신이 되거나 땅의 신인 하토고토누시까지 저주해서 잡아버리자는 이야기부터 기묘한 이야기가 많다.

  인간인 수도자 수행하고 신선이 되고, 결국은 타국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호랑이로 변신하여 땅의 신인 히토고토바누시까지 잡아 버린다는 기묘한 이야기가 있다.

이런 현상은 모두 「日本霊異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야쿠시지(薬師寺) 교카이(景戒)스님이 불력을 널리 알릴 목적으로 8~9세기경에 편찬한 일본 최고의 불교설화집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산에 다리를 걸쳤다고는 하나 천왕을 망치려는 음모에 의해서 3년 유배형에 처해졌지만 후지산에서 수행을 지속한 것은 일본의 고유의 신도(神道) 초기에 불교 사상이 전래되어 혼입되는 과정이라 보인다.

우리 고유의 토테미즘 등이 불교의 성행에 따라 혼합되는 현상과 도일하다. 절에 가면 반드시 산신당이 있는 것이 우리 절의 보통 모습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엔이라는 인물이 불교 수행자는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봐도 오래 신도를 신봉하며 수도자 역시 가능한 인물이라고 하는 것으로, 불교에 받아들여져 전설화되어가는 과정처럼 밖에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가쓰라기산 산록에 갈성(葛城) 씨 사람들의 조상신이고 그 신이 엔에게 체포되었다고 하나 그래도 엔은 상기 사료에 불교 수행자로 변신하여 소개되어 있다. 결국 불교를 수행하면 신이 되어버린다는 구도이다. 이런 경우를 미루어 보면 엔도 초기에는 신도의 신봉자였을지 모른다.

일본 전국의 땅 신들은 모두 엔처럼 신이 된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럼 엔은 어떤 인물인가. 암굴에서 수행하며 좋은 옷을 입고 솔잎을 상식하며 깨끗한 물로 더러움을 씻어 내 하늘을 나는 이러한 일련의 모습을 생각할 때, 그것은 불교 수행자의 모습이라기보다 산악에서 수행하는 수도자의 모습이다. 주술로 귀신을 부리고 물을 흡수하거나 장작을 때지 않으며 귀신이 명령을 듣지 않으면 마력으로 제어했다.

불교 수행자이기도 하여 불로장생의 신선이었기 때문에 숲속에서 살며 곡물을 일체 입에 대지 아노고 솔잎이나 풀뿌리를 먹고 수행에 전념했다. 도교 의술이나 방술 등에 익숙한 행자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하늘을 나는 상상 속의 동물인 천구(天狗)의 모습과 겹쳐진다. 하늘을 난다는 선인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와 중국의 신선 사상도 포함되어 결국 불로불사의 전설이다. 물론 현실에서의 역할에 엔은 다소 불교 사상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일본 고유의 신도의 전통과 사상을 지니고 성실한 수행 길에 나서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가 산에 다리를 놓고 건넜다는 것은 과장이다. 편년체로 기술된 쇼쿠니혼기「続日本紀」(697~791년까지의 일본 역사서)에는 귀신들 울력을 이용하는 수행자로 소개되어 있다. 신도 신봉자에게 불교사상인 신사상을 융화하는 과정을 좋게 표현했을 것이다.

아무튼 여러 산과 같은 기술이 많았던 그도 유배객 신세는 면치 못했음이 확실하다. 오늘날 일본 학자들이 엔을 수도자의 원조라고 한다면, 그 이유는 분명하다. 즉 불교가 펼쳐지기 이전에 이미 수도자 모습으로 수행하는 구 신도가 일본의 산들을 네트워크를 구축한 형태로 설치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제자 가라구니노 히로다리(韓国広足.からくにのひろたり. 생몰연대 미상)는 나라시대 초기의 주술사로 선조가 한국에 파견 된 적이 있어 이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험도(修験道)의 개조인 엔 오쓰누의 제자이다. 도교적인 주술을 배워 699년 스승의 우수한 요술로 사람들을 혹하게 했다 한다.

이로 인해 스승은 이즈로 유배가게 되었다. 724년~729년에 의술을 펼치는 주금사(呪禁師)였다. 장력을 이용 주문을 외워 악기를 쫓고 병이나 횡액을 방지하는 도교적인 주술을 행하는 자르 주금사라 한다.

나라시대에는 당시의 가라(韓, 唐)는 선진 문명국가였다. 따라서 가라가 붙은 문물은 고급 수입품이었다. 조정에서 1799년 신변대보살(神変大菩薩)로 시호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