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그 위대함
『한글의 탄생』을 쓴 일본인 한글학자 노마 히데키는 “유라시아에 나타난 기적”(2011.10.8 한겨레신문 10면 인용)이라 했다. 한자의 획 등을 이용해 만든 일본 문자와는 달리 중화사상에 깃들어 살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독특한 문자를 만들어 낸 창의성은 기적임에 틀림이 없다. 한자가 천년 가까이 이 나라 이 땅의 문화를 지배했지만 한글 창제로 문화의 욕구가 깊은 곳에서 샘물과 같이 용솟음 쳤다. 말과 문자를 일치 시키고자 했던 세종과 학자들의 시대를 거스르는 발상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화사상에 순치된 많은 학자들이 한글 창제가 역성적 발상이라 여길 만 하다. 그중 최만리가 있다. 누구라도 당시의 학자 또는 지식인이었다면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는 것이 당연했으리라. 같은 발음을 두고 음을 초성과 중성 등으로 나눠 발음하는 것 자체가 기존 문명에 대한 도전으로 보였다. 이에 세종과 그 학자들은 “천지 자연의 소리가 있다면 천지 자연의 글이 있다”는 논리를 전개 했다.
컴퓨터 워드의 등장을 이미 예견이라도 했듯 우리는 편하게 오늘도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전쟁 없이도 한나라의 문자가 외국에서 쓰이는 경우는 찌아찌아 족에서 이미 볼 수 있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에서 원주민인 아이마라 족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한글 표기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부족 인구가 200만 여명에 달하는 아이마라 족은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어 스페인어를 차용해 왔다.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는 1997년 글자로서는 유일하게 한글(훈민정음)을 세게 기록유산으로 지정하고 세종대왕의 생일인 5월 15일을 세계문명퇴치일로 지정하고 그 시상을 매년 10월 9일 훈민정음 반포일에 한다. 소설『대지』의 작가 펄벅여사는“한글은 단순하면서 가장 훌륭한 문자”로 치켜세우며 세종대왕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비유했다. 과학 잡지 디스커버리 1994년 6월호는 “한글은 독창성이 있고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 했다. 때문에 우수한 문자로 인해 한국의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 했다.
미국 메릴랜드대 언어학자 로버트 램지 교수는 2009 10월 6일 워싱턴 D.C. 주미한국대사관 코러스하우스에서 '왜 우리는 한글날을 기념하는가'라는 한글날 563돌 기념 특별강연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과 한글창제에 담긴 소중한 인본주의 정신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글은 중국어를 표기하는데 가장 효율적이고 한글을 도입하면 중국인들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지만 중국은 민족적 자존심과 같은 정치적인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며 한글의 국제화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지적했다.
이런 찬사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말을 버리고 영어를 쓰려는 분위기가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있다. 이미 초등 3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있고 사교육에서는 훨씬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주입한다. 초중등 때부터 외국으로 가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국내에 외국학교가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영어 열병을 앓고 있는 가운데 한글과 우리말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한글 이전에 우리말이 위기에 놓여 있다. 청소년들이 즐겨 듣는 노래는 가사에 영어가 넘쳐나고 있다. 학교 교육에서 영어 시간이 늘어나는 대신에 한국어 시간은 줄어든다. 영어 유치원은 비싼 학비에도 불구하고 들어가지 못해 안달인 상황이다.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떤 문자 생활을 하고 있을지 가늠이 어렵다. 새삼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깨닫고 감사한다. 어제 오늘의 상황을 돌아보면 오히려 죄송하다. 우리 글자인 한글을 홀대하고 나아가 우리의 말도 버리려 하는 움직임을 곳곳에서 보기 때문이다. 한글날에만 우리말과 글을 생각하지 말고 모두가 늘 우리 말과 글을 소중하게 가꾸며 살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2011.10.08 11:51 남해
2011.10.13 남해시대 신문 30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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