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커피 단상
우리나라 커피 역사가 언론을 타고 있다. 다시 그 시발점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초로 커피를 판 다방은 1923년 문을 연 명동의 후타미(二見) 다방으로, 고종이 처음 커피를 접한 것은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 때로, 덕수궁 정관헌(靜觀軒)은 고종이 커피를 즐긴 '커피1호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내 유일의 커피박물관 '왈츠와 닥터만' 관장 박종만(51)씨는 이러한 커피 문화 '상식'에 반기를 든다.1913년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문을 연 '남대문역 다방'이 그곳이라는 주장이다.(2011.3.13일자 조선일보 참조)
1989년 9월 11일 ‘김홍륙 독차사건 9월 11일은 고종의 생일인 만수절 다음날로 이재순, 심상훈, 민영기 등 3대신이 경운궁에 입시한 가운데 몇 명의 근시가 시중을 들었다. 이때 커피가 들어왔는데, 고종은 냄새가 좋지 않다고 마시지 않고 황태자만 한 모금 마시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고종이 쓰러진 황태자를 안고 ‘독차’라고 고함치자 궁중이 아수라장이 되고 독차 여부를 확인하자 커피를 마신 사람은 모조리 인사불성이 되었다. 기절한 황태자를 음급치료하여 소생시켜 놓고 커피를 검사해 본 결과 아편독소를 넣었음이 판명되었다. 궁중 요리사인 김종화를 문초하자 김홍륙의 지시를 받은 그의 아내 김소사가 공홍식을 사주하였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김종화와 공홍식은 그 밤에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김홍륙은 법에 따라 처단되어 사건의 진상은 밝혀지지 못했다. - 두산백과사전
이런 커피가 이젠 농사철 밭 언덕에서도 할머니들이 마시는 음료로 변신했다.
88올림픽 전 미국언론은 한국커피는 “야전커피”같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저급한 커피가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초 일본에서 나온 어떤 문화사 책에는 “커피와 **교(종교 이름임)”가 실패한 나라”로 적혀 있어 아연케 하고도 남음이 있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 맞는 말이다.
종교 문제는 차지하고 커피만 생각해보면 그 당시로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아도 싸다. 다시 말해 당시만 해도 진정한 커피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에는 사회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았다는 말로 해석해도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차문화 발전이 더딘 것은 숭늉과 막걸리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실 커피를 비롯한 차는 음식과 많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대만은 우롱차(烏龍茶), 일본은 녹차, 미국은 커피, 영국은 홍차가 대표한다고 가정하면 우리나라의 차는 과연 뭐로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는 단연 커피라고 하고 싶다.
자장면과 커피를 비교하면 색이 일단 비슷하다. 도시 지역의 공한지에서 약장사들은 “자장면과 커피 먹고 길거리에 토한 자”가 몸이 약하니 이약을 먹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여기서 자장면과 커피는 빈티 나는 우리 서민들의 생활을 웅변했다.
과거의 자판기 커피는 신 맛이 강했다. 커피는 쓴맛이 우선이고 신맛은 바로 저급 커피임을 상징한다. 현재의 자판기 커피는 그 때 비하면 우아한 맛이고 다양한 맛을 내고 있다. 거기다가 설탕 조절 기능까지 더해져 있다. 우리나라가 인스턴트커피의 대국임을 나타낸다.
고급스러움을 나타내는 말이 “원두 아니면 안 먹는다”고 하지만 현재의 자판기 커피만으로도 훌륭한 맛을 내고 있다.
한때 서민들의 연탄값과 비교된 커피값은 고가였다. 생활의 기본인 난방문제에서 기호품인 커피의 대조는 시대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경주 남산을 방문한 일본인과 필자는 등산 가방에서 주섬주섬 커피와 버너를 꺼내 계곡물을 받아 끓였다. 이 커피를 마신 일본인 “물이 달다”고 했다. 방학을 이용 폐사지를 탐방하던 때이므로 산중에서 산삼 녹은 듯 한 계곡물은 맛이 일품이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그 일본인은 끓인 물에 커피만 달랑 넣어 마셨다. 산중에서 블랙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특이했다. 봉지에 싸 간 설탕과 프림을 넣지 않은 채로 마셨다.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필자는 아마 음식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분석을 나름 했다. 단백 단순미의 일본 음식을 먹으면 차는 강한 맛을 찾지 않겠나하는 판단이었다. 우리같이 복합미의 음식을 먹는 사람은 오히려 순한 차, 즉 설탕과 프림 등을 넣은 차를 마신다고 지레 짐작했다. 온전히 맞는 말은 아닐지라도 약간은 설득력이 있다. 한 참 후 알아낸 이유는 “암예방” 즉 건강상의 이유였다.
생활의 일부처럼 여겨지는 커피 마시기에도 일부 후진국 어린이들의 노력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면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나치게 커피를 마시는 일은 건강을 잃는 일이다. 가능하다면 하루 석 잔 이하로 줄이고 1회용 종이잔을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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