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본 노인이 박정희를 묻다.
“대망의 80년대”는 70년 필자가 중학 다닐 때의 구호였다. 정치나 물정을 모르던 사춘기에 그 말뜻은 이해가 힘들었다. 그 때 홍보용 그림에는 대충 집집마다 자가용이 한 대씩 있는 만화 속에 저 말이 들어 있었다. 먼 외국의 이야기로 들린 것은 당시 농촌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좀 늦었지만 그 허황한 꿈만 같은 일들이 다 이루어졌다.
비학천재였던 아버지가 요행일지 모를 강점기의 일본 체재시절 한국인들이 늘상 들은 것은 “바카야로”였다. 실내에서 모자를 벗는 예의가 있지만 실내에서 의관정제는 우리 양반들의 습속이었다. 건조한 날씨에 등산 후에 이불 속에 그대로 들어갈 수 있는 게 한국의 건조한 기후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한국에서 처럼 몸을 씻지 않고 그냥 이불속에 들어가면 “기다나이”소리는 수없이 들어야 했다.
최근 외손녀가 음악회를 연다는 김소운 씨는 목근통신에서 당시 부잣집 아들인 유학생들이 일본인들 앞에서 집에서 보내온 소중한 반찬을 꺼내 먹지도 못했다는 말에서 문화적인 차이를 모르거나 이용해 먹은 일본인은 한 없이 밉기만 했다.
일본말을 조금 깨우친 필자가 첫 일본 여행은 교토국립박물관 소장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 입구에 있는 의상대사와 선묘 아가씨 이야기가 원전 그림인 도성사연기설화를 보고 어쩜 일본 문화는 거의 한국풍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무시하고 싶은 한국 문화가 그들 문화의 원전이라면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스러울까 그런 점을 감추려면 더욱 한국인내지 한국문화를 멸시하지 않았을까. 한국인 멸시는 일본인들의 또 다른 열등감의 표현이고 희생양이었다.
교토국립박물관 정원에서 100엔짜리 자판기 캔맥주를 마시고 있던 필자에게 정갈한 학자풍의 일본 노인이 대뜸 “보꾸 데이끼”가 너무 일찍 죽었다며 말을 걸어왔다. 고베 스마쿠의 친척집 아파트 엘리베이트 안에서 5세가량의 소녀가 던진 아이스크림 껍데기가 필자의 구두를 더렵혔을 때 모른 척하고 있었더니 그냥 귀싸대기를 때리던 40초반의 아이 어머니, 한일 합병을 반대했던 우치무라 간죠 등의 사상, 부산에서 자전거를 타고 박물관까지 온 65세 노인의 한국 알기에 조금은 필자의 대일관이 겨우 스물스물 해질 때였다.
맥아더를 ‘마카사’라 읽는 발음에 혹시 실수 할까봐 보꾸데이끼에 대해 일부러 반문했더니 노인 왈, 카메라를 벤치에 놓으면서 대뜸 박대통령은 나와 동향이라 했다. 강점기 대구에서 태어난 노인의 말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일본어보다 영어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전후 일본과 독일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것은 한때나마 독재적인 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한국은 그 과정을 짧은 시간에 경험하였고 이제 틀림없이 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장차 일본인들이 가장 무서운 사람은 일본을 잘 아는 국민이라 했다. 일본의 장점을 살리고 나름의 좋은 국민성을 살린다면 한국은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대통령의 죽음이 안타깝다고 했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머리에서 피가 흐를 정도의 예의를 표한 것도 불필요한 유교적인 명분 탓이다. 국민이 도탄에 빠지지 않으려면 지도자가 명분만 살려서는 아니 된다. 반일이 한국의 명분이라면 경제발전은 실리다. 박대통령은 유구한 한국만의 명분을 끊고 실리로 나아간 최초의 지도자란 말에 필자도 동조했다.
경제 발전이 나라의 국격이 될 수 있다. 김치가 기무치를 누르는 일도 서울 올림픽을 따올 수 있던 일도 조선산업과 중화학 공업이 나라 경제의 근간이 되는 그 추진력과 힘, 고속도로와 주민등록번호를 만들 때 결사 항쟁하던 반대파를 누르고 시행되어 산업화와 어쩜 정보화에도 기여했다.
노인의 얼굴에 뉘엿뉘엿 석양이 내릴 때 일본인같지 않은 열변을 토했다.
그러면서 꼭 한국에 돌아가면 경주의 나자레 양로원을 가볼 것을 권유했다. 그 당시는 한국노인을 위한 양로원이 일본 내에 없었다.
끝내 그는 박대통령이 10년만 더 살았다면 한일관계가 훨씬 더 좋았을 것이란 말도 했다. 이 말은 한국의 국격이 완성되고 경제적으로 일본과 대등해지면 일본 국익에도 이익이란 말과 함께. 그래서 지금도 필자는 88올림픽 유치전에서 한국을 지원해야 한다는 소수의 일본 내 양심들의 목소리에 경의를 표한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박대통령의 유업과 함께 난 그 일본 노인의 의외로 확신에 찬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쩌렁쩌렁하다.
2010.02.01 14:44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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