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태 자유언론인협회 회장의 궤변
치과의원 원장께서 언론 단체 회장이라니 좀 의아하다. 얼마만큼 자신의 편견없는 ‘자유’를 만끽하는지는 약력을 보지 못해 평하기 어렵다.
다만 그가 『월간조선』 「양영태의 자유 세상」에서 정말 자유롭게 일갈하셨다. 바로 박사모를 그 대상으로 하고 아주 ‘자유롭게’ 일필휘지한 전문가 칼럼이었다.
우연히 본 기사에서 이런 내용, 개인의 편견을 제법 그럴싸하게 버젓이 올려놓은 『월간조선』의 소행이 염치가 없어 보여 가소롭다. “朴사모, 正體가 뭐냐”란 제목 역시 도전적이다. “증오심에 불타 선거불꽃 굿판을 벌이고 같“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외쳐대는 코너가 인기를 끌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환자건 말건, 노인이건 말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무자비하게 휘둘러대는 정치보복의 칼부림을 보면서도, “약자에게도 정치보복의 칼을 꽂는 더러운 세상은 당후보를 낙선시킴으로써 다른당 후보에게 간접이익을 주려는 이러한 類 의 잔혹한 복수성(復讐性) 펜클럽이 과연 진정한 펜클럽 이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하면서 “ 박근혜의원이 대통령이 된다고 가정을 해 볼 때 박사모의 모습은 아마도 과거 ‘노사모,의 모습보다 훨씬 더 공포의 그 무엇으로 다가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고 지레 짐작도 잘 한다. 힐러리가 오바마 당선에 “쇼”가 아닌 진지한 선거 운동을 해서 국무총리 낙점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의사이니 이 사회의 상류 계층으로 여겨진다. 이런 부류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온실에서 화초만 보고 우월적인 사고로 무장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월적인 지위의 이대통령의 시각과 철저하게 동일시하고 있다. 모든 것을 얻은 현직 대통령이 포용력을 발휘하지 않는 한 약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이다. 이런 엄연한 현실을 실감하지 못한 상류층인 양영태의 궤변은 지겹다.
오바마처럼 대국적인 모습도 포용력도 발휘할 능력도 시도도 않던 당선자에게 우월적인 승리자의 포용력 발휘는 힘든 일이고 사치일지는 모르겠다. 패자에게 굴욕을 요구하기보다 승자에게 아량을 요구하기가 훨씬 보기가 좋다.“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외쳐대는 코메디 코너가 인기를 끌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환자건 말건, 노인이건 말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무자비하게 휘둘러대는 정치보복의 칼부림을 보면서도, “약자에게도 정치보복의 칼을 꽂는 더러운 세상"이다.
자발적으로 탄생한 박사모를 향해 “복수성(復讐性) 펜클럽”이라고 한다면 양씨의 칼럼은 많은 독소를 갖고 있다. 극도로 편협해 보이는 자신의 칼럼이 5적에게 낙선운동을 벌이겠다는 말이 복수로 보인다면 자유 언론의 시혜를 받는 양씨에게 필자의 이 정도 칼럼은 양반이다. 양씨도 아시다시피 복수는 개인의 원한을 해소하는 차원이 아니면 군집한 박사모의 오적 규정이 객관성의 담보가 필요하다. 5만이 넘는 자유개체의 의사결정에 겨우 한줌밖에 않되는 양씨가 그런 판단을 하면 편협하기 짝이 없다. 양씨가 반박 단체를 만드는 것도 자유이다. 하지만 양씨가 노력하지 않아도 반박 단체는 우후죽순 격이다. 그 선동적인 언사가 사회 지도층이 될 수 있는 양씨가 단체를 만들고 싶을 정도라면 박근혜의 대중적인 인기가 잘못 됐다는 말인데 이에 대한 반박은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의원보다 더 훌륭하고 더 똑똑한 정치인들만을 골라서 낙시질(?)한다는 소문”에서 개인에 대한 평가는 할 수 있지만 여기서도 객관성도 없이 ‘더 똑똑한 정치인’이라면 양씨가 거들고 있는 반박의원을 의미한다면 양씨의 의식에 문제가 있다. 주요한 단어인 낚시질을 “낙시질”이라고 협회장이 쓸 정도의 급한 부탁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애국 국회의원인 전여옥 의원”이라고 하여 기고만장한 자유 필치가 금도를 넘었다.
물론 애국의원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표절시비에서 전의원은 상고를 한다고는 하지만 “표절녀”로 일단 판명이 나고, 거액의 민사소송이 기다리고 있는 판국이다.
일본에서 표절국이란 오명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가 또 한 번의 표절국으로 낙인찍히게 한 평민도 아닌 정치인을 애국국회의원이라면 양씨 혼자만의 애국심에 경의를 표한다.
양씨와 같은 이런 글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정치보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알게 한다. 극히 편향된 생각으로 일기장도 아닌 월간지 홈에 버젓이 올려놓은 진정한 이유를 알고 싶다.
양씨는 다른 글에서 정도(正道)란 무엇인가? 라 하면서 원론과 원칙이 정도라는 말뜻이 왜곡 되었다고 “한없이 울고 있는 국민들이 점차 늘고 있다. 무척이나 서럽게 흐느끼고 있는 국민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이다” 공산당도 아닌 당에서 의견을 달리 했다고 당규를 어긴다고 한다면 정상적인 법률을 지키자고 하는 것이 정도가 아니고 뭔지 반문하고 싶다.
양씨는 밥상머리에서 자식들에게 법을 어기라고 교육하는가? 악법도 법이라면 지켜야 하지 않을까?
울고 있는 국민은 양씨와 같이 조그마한 논리가 끝까지 맞다고 우기는 어슬픈 논객들의 맹활약 때문이다. 도리어 충청도민들은 박근혜의 투쟁에 박수를 보내고 있고 세종시에 땅을 빼앗긴 주민들의 눈물이 늘어 날뿐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정도로 가시기 바란다.
2010.1.27.09:58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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