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열등의식의 발로
최근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는 비빔밥 발언으로 또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여러 차례 극히 일본적인 판단으로 일본 우익들의 속을 시원하게 하는 발언을 일삼아도 그가 사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가 이렇게 도도한 이유는 뭘까. 그가 유난히 우익적인 일본 교육만 받아 그렇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많은 한국의 식자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흔한 우월감만의 표현도 아닐 것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흔히 일본의 역사 왜곡을 단시일 내에 일본의 일부 계층에서 만들었다고 여기기 쉽다. 물론 독도 문제도 순간적인 문제가 아니다.
전반적으로 일본은 한국을 재침하기는 힘들 것이다. 일본 주류들은 한국내에 친일 정권의 탄생을 내심 바라고 있다. 그 전략의 일환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독도 문제는 한국의 행보에 뒷덜미를 잡아 두는 보험 성격이 강하다.
과거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기보다 무시 대상을 찾던 조선, 조선인은 아주 적합했다. 비교적 생활에서 지저분해 보이고 덩치만 크고 어수룩한 모습의 조선인들이 그랬다. 그결과 관동 대지진의 조선인 학살도 있고 작금의 재일 한인들의 차별이 있다.
이런 결과는 지속적인 일본 주류들의 대국민 학습 효과에 있다. 언론을 이용한 그들만의 선민사상을 위해 집요하게 열등 희생 대상을 찾은 결과이다.
전체적인 역사의 맥락을 보면 그들만의 선민사상은 도리어 열등사상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일본내 주류들이 특유의 열등의식을 포장하거나 미화시킨 것이 선민사상일 수 있다. 최근 이병헌의 여성문제에 일본 방송은 당사자와 어머니를 출연시켜 그들의 발언이 전국에 방송을 탔다. 이도 교묘한 일본 중연 여성들의 환상을 없애기 위한 그들만의 계략이 틀림이 없다. 삼성전자의 실적 선전에서 초조한 나머지 구로다 역시 비빔밥 비하 발언으로 환상을 깨기 위한 몸부림일지 모른다.
과거 오사카의 한식당에서 비빔밥을 비비는 모습만 봐도 한국인과 일본인을 구분할 수 있다 했다. 과연 맞는 말이다.
필자가 쓴 글에도 이미 있는 내용이지만 우리 음식은 복합미다. 반면 일본은 단순미라 할 만하다. 김치와 다쿠앙(다무지)만 보면 단번에 대비된다.
원재료의 맛보다 복합적인 양념 맛이 대부분인 우리 음식에 비해 일본음식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이런 문화적인 차이를 그가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물론 음식 준비가 번거러운 한국음식이지만 일단 완성되고 나면 여러 영양소를 단번에 습취할 수 있다. 김의 경우에도 기름을 바른 한국식 김은 소화도 절묘하고 김 외의 다른 영양분도 한꺼번에 섭취할 수 있다. 역으로 보면 재료 맛을 강조하는 것이 일본 음식의 특질이다. 이런 그가 “양두구육”이라 비판을 하기보다 과거 일본인들처럼 비비기보다 밥 따로 나물 따로 먹으면 된다. 스시가 미국에서 날 음식이라 하여 야만인 음식으로 대접받았다.그는 한국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이다. 그의 지나치게 편향된 시각은 결국 일본 우익들의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고 먹고 살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이런 발언도 일종의 문화 왜곡이고 역사 왜곡이다.
그의 발언이 긴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역사 왜곡이다. 일본의 한국 멸시 사상의 원조는 일본서기와 고사기 등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신라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심이 왜곡된 정사 기록을 남겼고 이를 원용한 일본주류들의 손쉬운 우월감 창조에 텍스트였다. 백제왕조의 유민과 근친관계였기 때문이다.
국제 도덕성이 없는 일본이 세계를 향해 평화를 주창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그런 일본의 정서를 받은 구로다가 “무식하기”는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다. 그의 관념을 초월한 사상 역시 섬나라 사람임을 숨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지속적으로 한국폄하를 해야 밥벌이가 되기 때문이고 일부 남만인 섬나라 사람들 근성에 알맞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한국인, 몽골인은 일본의 본가이고 일본인은 감사해야 한다. 한국인들이 일본땅까지 와서 좋은 나라를 만든 조상의 진취성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본가인 한국인들도 본가의 이런 업적을 평가해 주었으면 한다” 저널리스트 사쿠라이 요시코(櫻井よしこ)의 『세상은 의외로 과학적이다』란 책에 나오는 말을 명심하기 바란다. 결국 열등 남만인들의 절규에 지나지 않은 점을 우리는 대국적인 시야로 편하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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