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의 세상읽기

어느 황당 버스기사 이야기

책향1 2009. 12. 20. 09:53

어느 황당 버스기사 이야기

 

한파가 전국을 엄습한 19일 5시 30분경 예의 서상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살 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쫓느라 발을 동동 굴렀다. 오후의 퇴근길이었다. 차가 없는 탓에 필자는 매일 남해읍 버스정류장에서 사무실이 있는 서상 농협 앞까지 버스로 출퇴근을 한다.

기다리는 마음도 몰라주고 추위도 멈출 줄 모른다. 기다리다 지쳐 114전화 안내를 받고 버스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간이 5시 58분.

전화를 받은 젊은 사무원인 듯 “(필자가)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못 봤다. 분명 50분에 도착했고 운행을 했다”, "차표 확인을 하니 분명 운행했다"고 했다. 서비스 문제로 항의를 하면 의례 듣는 말, ‘당사자의 잘못’을 말한다. 버스 회사도 당연 예외가 아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잘못이 희석되는가 보다. 택시를 부르고 겨우 담당 기사 이름만 알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버스 정류장을 지킨 보람(?)이 없다.

추워 벌벌 떨고 있어도 택시도 오지 않는다. 다시 전화를 하니 도리어 어딘지 묻는다. 분명 서면 농협 앞이라 말했지만 재차 묻고 있으니 참 기가 찬다.

언 몸에 한참 후 도착 한 택시 안에서 버스 이야기를 하며 기사 이름을 대니 대뜸 친구란다. “오늘 초등학교 동창회가 6시에 있어 빨리 갔을 것이다”라 하고 당장 전화 해보자고 한다. 다행히 초등학교 동창 수첩에서 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하니 제시간 보다 빨리 간 것을 시인하는 듯 했다. 택시 기사가 버스 기사에게 군청에 계신 분이이고 하니 사과하라며 전화를 바꿔준다.

그런데 그 동창회에 참석 중이던 버스기사 왈 “버스가 늦을 수도 있고 빠를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런 일로 소비자 입장을 강변하고자 하고 대접받겠다는 것이 아니다. 서로에게 듣기 좋고 하기 좋은 말은 이미 태평양을 건너간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약이 오른 필자는 버스 사무실에 재차 전화를 하니 구수한 목소리의 50대로 보이는 분이 전화를 받고 정중히 사과를 하니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필자는 사무실 직원과 그 버스 기사가 직접 사과 하지 않으면 “그만 두지 않겠다”고 하며 전화번호를 남기고 끊었다.

한참 후 버스 회사의 간부인 지인이 전화를 했다. 전화번호만으로는 필자가 누군지 모르니 누구냐고 재차 물었다. 이름을 대니 알았다며 미안해했다.

이런 경우 재삼 거론하는 자체가 필자도 민망하다. 다 지역 사회인 탓이다. 하지만 필자는 6,70년대의 콩나무 시루 같던 버스를 경험했다. 당시 버스 기사들은 승객 알기를 무슨 짐짝 보는 듯 했다. 오죽하면 일본 문학가인 김소운씨는 일본 버스 기사들의 서비스 정신을 말하며 “(일본에서 모든 것을 배워오면서)나쁜 것만 배우고 좋은 서비스 정신은 왜 배워 오지 않는가”라며 한탄을 했다. 승객이 있어야 버스 회사도 있다. 농어촌지역의 버스 회사에는 지자체 등에서 거금의 적자 보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둡고 추운 길가에서 필자가 아니고 노인들도 기다릴 수가 있다. 개인 볼 일을 위해 버스 시간도 지키지 않고 운행하고도 반성은커녕 승객에게 도리어 "한말씀"하는 기사를 보고 갑자기 어렵던 과거가 떠올랐다.

아무튼 퇴근 후의 일진이 개떡같은 날이었다.

 

2009.12.20 09:53 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