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7월호보물섬 원고2
남해삼베의 영광을 그린다.
4,50대 이상의 장년층은 과거 보릿짚이 타는 듯한 그 더운 날 겨드랑이가 보일 듯 말 듯한 땀에 젖은 어머니들의 삼베적삼을 많이 기억할 것이다. 무더운 그 여름날 내의도 입지 않은 어머니들의 거친 손으로 시렁에서 떠주는 시원한 우물물에 만 꽁보리밥도 그리운 건 보기 힘들어진 탓도 있다. 개인적으로 아버지가 밧줄을 꼬기 위해 자갈밭에 많이 심던 대마 즉 어린아이 손의 열배가량 큰 삼의 이파리 긴 그늘 밑에 숨바꼭질하던 기억이 새로운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이파리가 주위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대마포 또는 마포라고도 하는 삼베는 대마의 껍질에서 뽑은 실로 만든 천으로 이미 삼국시대에 칠공품이나 신발의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삼베의 역사는 매우 길어도 우리 지역에 전래과정으로 알려진 것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목화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가장 많이 사용된 천이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적절한 의복의 재료가 없었기도 하지만 삼베의 원료인 대마의 생장에 필요한 풍토나 삼베의 제조기술이 좋았기 때문이다. 삼에서 섬유를 분리하는 방법이 삶아서 벗겨내는 식으로 발전해 왔다.
현재의 대표적인 마직물은 전남 곡성의 돌실나이와 경북 안동의 안동포로 둘 다 각각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 흔하던 것이 이제 우리 지역에서는 지나다니며 최종적으로 손질하며 말리는 삼베만 보고 다녔다.
지인의 소개로 방문한 고현면 남치리 마을 회관 뒤의 이순이(69세. 여)씨 댁에서는 20m 가량의 삼실을 연신 빗질하던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시아버지가 오셔도 밥상도 못 챙겨드리는 것이 삼질이라 카이”라며 반가워 하셨다. 자세히 보니 은은하게 피워놓은 불 위에 삼실을 올려 말리고 한쪽에선 보리를 어께고 된장을 넣어 쑨 보리풀을 바디를 지나는 삼실에 묻혀 비질을 하느라 바쁘다. 또 다른 한쪽에선 베 도투마리(물레)에 작은 막대를 넣어 감고 있었다. 이 광경은 삼베 제작의 과정 중의 일부의 일이다. 원료인 대마 껍질을 수십 번 물에 담구고 삶고 올로 만들고 양잿물에 담그고 다시 가는 실로 만드는 힘든 작업은 할머니의 대나무 마디보다 더 굵은 손마디가 다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완성된 실은 또 한번 부드럽게 하여 전체를 이어주는 작업과 실패구리(실패)에 감는 작업을 거쳐서 베틀에 올라간다. 45여년을 하여 왔다는 일이 이제는 힘이 드시는지 가끔 기지개도 켜고 하늘도 보곤 한다.
농촌 지역에 젊은이가 없고 특별한 농외소득이 없는 상황이라 이 일을 맡을 사람도 앞으로는 없다고 했다. 그래도 힘 든 밭일을 끝내고 밤새 했던 길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다. 베 짜는 모습을 좀 보여 달라고 간청을 하자 할머니는 대뜸 “구찌베니(입술연지)를 발라야 잘 나올 낀데”하며 카메라를 의식하는 모습이 요즘 어떤 젊은이보다 유머감각이 풍부했다. 하루에 10자 즉 10m가량 짤 수 있었지만 이 제는 반 정도도 하기 힘들단다. 한 달에 두 틀(도툼바리)을 생산 할 수 있다는데 최근에는 값싼 중국산의 범람으로 판매가 쉽지 않다고 한다. 순수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남치의 삼베는 그 질에서도 타지역 생산품보다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다. 가능하다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산 교육장으로 실지 수작업 광경을 보여주는 것도 보람된 일이다.
오늘도 할머니는 3남매의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출가시키면서도 묵묵히 손을 놓지 않았던 삼실을 침침한 눈을 부벼 가며 연신 잇고 있었다.
인접지역의 고려대장경 판각지와 연계한 닥나무로 한지 생산과정을 재현한다든가 지금처럼 남해 삼베의 좋은 품질을 유지하여 상품을 특화한다면 관광 남해의 또 다른 체험관광 코스로 좋다.
땀에 젖은 삼베옷을 입은 어머니의 모습과 그 내음이 그리운 것은 필자도 필시 그 때의 어머니 나이가 어느 듯 되었음을 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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