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사랑해요 보물섬 2003.12

책향1 2009. 9. 21. 23:18

한려대교 어떻게 되나?

글. 





얼마 전 신문에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서는 1926년부터 유명한 다리 건설 현장에서 일해온 한 기능공의 이름을 따서 교량명으로 정해 화제가 되었다. 유명인사들 이름만 교명으로 삼다가 무명의 교량 건설 노동자의 이름도 교량명이 되어 널리 후세에 알려지게 된 사실은 보고 미국인들의 또 다른 좋은 면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우리 남해에 또 하나의 가칭 '한려대교' 가설이 본격 추진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2001년 에 지정된 남해와 여수를 있는 국도 부산 인천간의 77호선상의 이 다리는 교량 4km와 접속도로 2km로 사업비는 약 3,100억 원이 소요되는 어마어마한 사업 규모다. 이는 전남도에서 밝힌대로 국회의 건설교통상임위원회가 우선적으로 ‘한려대교’ 건설사업비로 10억 원을 반영했다고 한다. 

다리가 개설되면 113km인 남해 여수간 이동거리가 13km정도로 줄고 시간도 2시간에서 13분 정도로 단축되며 광양만권 순환 교통망 구축으로 여수, 광양, 남해, 진주산업단지 물동량 처리가 훨씬 원활하게 될 것이다. 특히 남해안 광광벨트의 중심선에 잇는 남해와 여수, 사천을 연결함으로써 해양관광의 집중화와 일련화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과거 뱃길로만 다닐 때는 여수가 남해의 생활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멋진 다리가 놓인다고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인다. 정부에서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경남과 전남을 연결하는 남해안 관광벨트의 조기 조성을 통하여 동서화합은 물론 지역 상호간의 균형적인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전남도는 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를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는 생상 유발 효과 등이 88올림픽에 비해 10배에 이를 것이고 도시발전을 훨씬 앞당긴다는 직접적인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남해군도 여수시의 또 다른 박람회의 유치 성공을 겨냥해 배후 관광, 주거도시로써 일익을 담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혜의 자연 환경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미리 인접 지역으로써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잡기 위해 여러 가지 만반의 준비를 해둬야 한다. 180만으로 예상되는 관람객을 잡을 수 있는 방안을 반드시 모색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사 단계에 이른 골프장 건설을 비롯한 남해리조트 개발 사업이 잘만 진척되면 여러모로 금상첨화 일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남해군의 위상이 더 높아지고 군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이렇게만 된다면 먼 앞일을 염두에 둔 남해군의 사려깊은 혜안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런 점에서 올 12월 구성될 가칭 한려대교추진위원회를 위해 실무협의회를 구성한 점은 누가 보아도 잘한 일이다. 교량의 조기 건설을 위해서 직접 군행정책임자가 불철주야로 뛰는 모습은 진정 우리지역을 위한 열의에 찬 행동으로 길이 후손에게 전해야 한다. 또한 조기건설을 위해 남해인 전체의 역량을 한 곳에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한려대교’ 조기 건설 촉구 대회를 여러 차례 개최하여 여론을 조성함과 동시에 우리의 결집된 염원을 내외에 널리 알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지역의 최고 책임자가 여수KBS방송에 직접 출연하여 여러 지역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알린 내용은 정말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천혜의 자연자원과 잘 어울려진 청정한 한려수도의 활용을 극대화하여 수지 맞는 무공해 관광산업에 역점을 두고 지역 여건에 따라 맞춤식 생태공원이나 휴양 스포츠 특구를 많이 조성해야 한다. 그동안 접근성이 떨어져 두 지역의 발전에 저해요인을 일거에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고 영·호남 인적, 물적 교류 확대를 상호 발전은 우리 모두가 환영하는 일이다. 간략하게나마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 동안의 경과를 보면 1998년 7월 16일 남해군이 남해, 여수간 한려대교 건설에 핵심을 둔 남해안 관광벨트개발계획을 문광부에 제출한 후 1999년 6월 25일 언론의 조기 착공 크게 보도하고 이어 6월 27일 한려대교(가)유치준비원회가 구성되어, 1999년 8월 12일 유치위원회가 공식 출범하였다. 그 후 8월 17일과 9월 15일에는 읍 사거리와 이동장터, 이락사 주차장을 중심으로 한려대교 유치를 위한 거리 서명 운동이 벌어졌고 1998년 8월 12일 결성되어 지속적으로 벌여온 가칭 한려대교 유치위원단이 한려대교조기착공을 희망하는 뜻이 담긴 군민 2만 2225명의 서명서를 담아 1999년 11월 9일 ~11일 청와대 등 중앙관련 부서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2002년 9월 예비 타당성 조사 결과 기획예산처에서 장기계획으로 확정하였으나 12월 ‘2010 세계박람회’ 개최가 무산되어 그 대안사업으로 다리 가설을 기획예산처에 건의하여 같은 달 전남 동부권 현안사업으로 확정된 후 관련 중앙부처에 건의했다. 2003년 1월 8일 기획예산처 방문시 건의하고 같은 달 14일에는 여수, 순천, 광양시장 합동 신년 기자회견에서 다리 가설의 타당성이 거론 되었다. 그 다음날인 15일에는 중앙부처 경제장관 회의에서 여러 건의를 전폭적으로 수용하되 ‘2012 인정박람회’유치와 연계하여 건설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2월 22일에는 국무조정실에 군정 최고책임자의 직접 지참 건의가 있었고 4월 10일 교량 가설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이의 추진을 위해 최채민 남해군의회 의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면민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교량의 조기 가설을 촉구하는 결의하는 대회를 이장단과 각 단체와 주민 200여명이 모여 남상마을 회관에서 열었다. 5월 13일 군수의 건설교통부 방문시 국고 지원을 건의하고 6월 19일 광양만, 진주권 광역개박협의회의 공동 건의문으로 채택됐다. 이와 같이 오랫 동안 여러 차례 전 군민의 유치를 위한 행사와 다양한 노력이 있었지만 어떤 실무자의 실토처럼 ‘스펀지에 물붓기 식’ 이었다는 말이 그 동안의 우리의 실정이었다. 이는 실무자들의 열의와 성의에 비해 상급 기관의 반응이 신통찮았다는 표현일 것이다 이는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잊어버려 조그마한 관심조차 없던 일에 꺼진 불을 새롭게 지펴 절대 절명이라 할 수 있는 남해의 미래를 위한 사명감과 애향심으로 뭉친 군정책임자의 과감성 있는 끈질긴 노력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보아진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우리 남해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충절과 서포 김만중을 비롯한 유학자들의 예와 효를 동시에 마음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전국에서 몇 안되는 좋은 조건의 산 교육장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잘 황용하고 이미 중장기적으로 개발중인 덕월, 평산 체육휴양지구와 남해스포츠파크, 송정 관광단지,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 유허지 등이 순조롭게 진척된다면 기존의 남해대교, 창선·삼천포대교에 제2의 남해대교와 ‘한려대교’까지 네 개의 다리가 사방을 지탱하여 외형적으로도 안정감을 보이며 서로 잘 어울려 낭만의 보물섬이 되어 전국 제1의 자치단체로 자리잡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 일본이 자랑하는 세토나이카이대교나 미국의 금문교처럼 세계적인 명소가 되어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포항 호미곶의 등대박물관처럼 실물을 보여주는 다리 박물관이나 다리전시잔으로 불리는 보물섬이 될 것이다. 아울러 다리 이름으로 시끄러웠던 창선·삼천포대교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항상 잊지말자. 머지않아 남해 여수간을 운행하는 경전호는 추억으로만 남을 날이 멀지 않을 것같아 아쉽다. 오래된 바랜 사진 속에서만 그 모습을 봐야 한다면 그것도 분명 작은 행봉이다. 남해 사람의 억척스러움을 나타냈던 ‘남해똥배기질’도 이제 사전에서나 나올 말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