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역언론의 기사취사 문제와 그 대책
최근 지역 언론들의 기사 선택에는 많은 문제점이 내포하고 있다. 물론 편집권 자유에 의한 편안한 선택일 수 있고 영리 목적의 언론사 자체의 판단일 수 있다. 지역 언론사의 영세성에 의한 광고주 우선일 수도 있다.
지역 언론사들은 항상 “지역 문화 창달”이니 “언론정도”등 화려하기 그지없는 사시를 내 걸고 있긴 하다. 과연 그 주창하는 자신들의 주장만큼 기사 선택이나 작성이 부합하는지 여부는 논란의 대상이 된다.
지역언론사의 가장 큰 취약점이 서두에서 적은 바와 같이 영세성이다. 영세성으로 인해 독자들이나 광고주로부터 편집권 자유는 영원한 화두로 두고두고 논란거리이다.
다시 말해 언론사 자체의 경제성이냐 신문의 정도냐 갈림길에서 이도 저도 아닌 경우가 무수히 있었다. 일반 독자들이 유심히 보지 않고 부화뇌동하거나 천박성에 기생하여 무심코 간과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외형적으로 기사에서 업소를 다루고 그 밑에는 광고가 실리는 경우가 그런 현상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보면 너무 많아 일일이 지적하기 힘들지만 상징적인 몇 개만 예를 든다.
남해시대 신문 2006년 10월 12일자에서 “개원 30주년 맞은 **자동차학원 *** 원장” 제하의 편집자 글을 보면 “(전략)**자동차운전전문학원이 문을 닫게 된다면… 남해에서 운전면허증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눈앞이 캄캄해진다.(후략) *** 원장을 만나 **자동차운전전문학원의 경영상황이 어느 정도 심각한 것인지, 학원을 살릴 방안은 없는지 들어보았다<편집자 주>”고 되어 있으며 하단부에는 역시 그 업체 광고가 실려 있다. 여기서 편집자 주로 글쓴이가 되어 있어 언론사 자체 성향으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눈앞이 캄캄 해진다고 하며 경영의 “심각성”도 살피며 특정 사기업을 너무 많이 걱정하고 있다. 사기업의 운영 책임은 사주가 책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문사에서 온갖 걱정을 다하고 있고 기관의 지원을 앞장서서 요구하는 듯하다.
한 때는 음주 운전을 한 공무원의 기사에서 마치 음주 운전을 옹호하는 듯 기사가 게재되기도 했다. 여기서 공적인 소임을 잊은 개인 친분이 더 작용하는 것처럼 보여 독자들을 아연케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또 최근 기사 중에는 정치성이 깃든 경우도 있다. 지역에서 누구나 차기 지방 선거에 출마하는 것으로 여기는 인물의 글을 싣는 경우이다. 현직의 경우 군정홍보나 동정, 행사에 따라 기사의 비중이 높은 것은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다. 그에 따른 반대급부나 독자들 알권리를 위한 명분으로 비춰지기도 하나 노골적인 정치성이 들어나는 기사의 독자기고를 빌린 형태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정치 지망생들의 기사를 다 실어 주지는 못할망정 일부라도 싣는 게 공정하다는 판단할지 모른다.
하지만 일부의 주장이나 자그마한 이치를 크게 부각시키고 개인적인 야망달성을 위해 법인이고 공적인 신문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귀를 닫고 있다.
남해신문 2009년 8월 14일자 14면의 “소모성 행사, 모임 너무 많다”라는 제하의 박모 (평통자문회의 남해군협의회장)의 독자 기고는 제목처럼 소모성 행사가 지역에서 많고 부제에서처럼 알맹이 있는 행사이기를 바라는 기사이지만 그가 지난 지역 보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하고 차기 지방선거에 입후보가 유력 한 사람이다. 마을 회관 준공식에 다녀온 향우의 말을 빌린 이 기사는 당연히 맞는 말이다. 지루한 행사에 인사말 등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한다. 물론 주객이 전도 된 현상이다. 하지만 이 행사 자체의 지루함을 지적하는 것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 이 기사의 의도성이다. 그가 정치적이지 않았다면 이런 말이 나올 수 없다. 아니면 자신은 소개에서 빠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과거 자신의 주도한 행사에서 자신은 어떤지를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이 기사는 다시 지역 인터넷 신문에 상단에 실리는 등 한 개의 기사로 톡톡히 개인 홍보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이 인터넷 기사는 친분관계를 활용한 언론(?)의 객기로 보아도 타당하다. 타 언론사에 실린 같은 기사를 언론사로 자처하며 싣는 의도는 바로 자존심에 눈이 먼 결과 언론사의 설립 목적에 의심을 자아 낼만 하다.
2009년 6월 26일자 남해신문은 “정군수 당적이 필요하다”란 제하에 그 이유로 “소속이 없으면 책임 행정 실천이 어렵고 지역민 신뢰도 낮아”라고 한다. 지난 6월 5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내용을 접하고 적었다고 한다.
이 기사 내용을 보고 우선 당적이 없으면 정말 책임행정 실천이 어렵고 지역민의 신뢰도가 낮은 지 여부이다. 기사의 성향을 보면 한나라당 입당을 하지 않아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은 유감이다. “자리이타 지공무사” 정신으로 멸사 헌신해야 하는 방편이 한나라당 당적 보유인지는 의아하다. 일당적인 이해에서 출발한 흑백 논리는 그 편협성만큼 부담이 있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함이 옳았다. 이 글을 쓴 분은 현직 모당 남해 대외협력 분과위원장이다.
2009년 7월24 23면 “용호상박만이 살길이다”라는 독자 문모씨가 작성한 글이 있다. 제목만 보면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알기가 힘드나 내용을 보면 결국은 내년 군수 출마를 꿈꾸는 사람인 글의 작성자와 결국 현직 군수와의 맞대결을 원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글의 문제점은 위에 든 예와 같이 결론적으로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 강화와 언론을 이용한 공짜 홍보라 보인다. 왜 용호 상박 즉, 현직군수와 자신의 띠를 은유한 채 그것만이 실길인지에 대한 논리는 없다.
이런 류의 글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부각이라는 점이다. 언론이 개인 위상 제고에 이용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점을 간파하지 못한 편집자의 둔감함을 나무라지 않을 수 없고 좀 더 분발하기를 바란다. 현직에 대한 일종의 반감이 이런 식의 편집방향으로 나타났을 수도 있으나 이는 개인적인 판단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진정 전체 공익과 신문의 가치 제고를 위하는 길은 종국적으로 기사의 고급화와 공정성에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7,80년대 대학생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들고 다닌 영문 뉴스위크나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있다. 그 어설픈 한국 지성의 상징 중의 하나였고 88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월간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파산 신청을 했다는 보도가 있다.
지난 1922년 미국의 D. 월러스가 만든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유익한 기사와 이야기들을 요약해서 모은 교양 잡지다.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며 독자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1935년 영국 진출을 시작으로 현재 44개국에서 21개 언어로 발행되고 있으며 전 세계 1억 명 이상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일문판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교과로 사용될 정도로 교양지로 이름이 높았지만 파산 신청 보도는 출판 시장의 악화도 문제지만 편집자등의 안이한 상황 판단이 한 몫을 했다.
전통과 명성을 자랑하는 잡지도 파산 하는 판국에 기사 취사문제가 꼭 편집권 독립이 별스레 강조되는 이 시점에 많은 시사점을 지역의 언론인에게도 던진다. 편집권 독립과 언론의 자유는 그 만큼 책임과 의무가 부여되어 있다. 이를 망각한 채 전체 신문의 가치와 품위를 떨어뜨리는 신중치 못한 기사 취사는 언론의 기본자세에서 한참 일탈한 경우이다. 기고글의 경우 작자와의 친소관계에 따르거나 그 작성 배경을 감안하지않은 게재는 신문의 정도와는 거리가 멀고 영악한 영리성을 내세운 경우이고 좀더 언론이 독자들에게 솔직해지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기사 취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리고 자아비판 즉 신문사 자체의 기사에 대한 자전적 비판이 궁극적으로 신문의 질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2009.08.20 10:49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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