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의 엉겅퀴
색(色)이라면 인간은 참 간살맞다. 봄 개울가 움트는 연한 색에서도 편애를 할 수 있다. 편애에 대한 연유는 개인적인 경험이 작용한다. 밑둥치 잘려나간 나무에서 연륜을 느끼고 어린 새싹 빛에서는 생명을 맡는다. 겨울 앙상한 나체만인 배롱나무, 양반집 사랑방 쪽의 자귀나무는 연일 잎을 움찔거린다.
고매한 나무들은 인간사를 더불어 구경하지만 바위 밑에 핀 진보라 색만으로는 인간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기계로 벌초한 무덤가에 피고 출근길 산 어귀에서도 다소곳하다. 아무 동반자 없이도 단정하며 내핍을 강조하며 잡풀이기를 거부한다. 귀함도 덜함도 태생도 평가를 거부한다.
공기 좋고 물 맑은 양지에 터전을 이룬 고귀함은 전혀 없다. 윤기는 없지만 옹이 지고 뒤틀린 팔자로 환경의 척박함을 스스로 갈무리도 잘한다. 거친 손으로 세상과 악수한다.
어머니 저고리 색으로 어울릴만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눈길로 부드럽게 세월을 매만지며 울음을 참는다.
자연의 연금술사가 숲을 우거지게 하고, 더운 육질을 내뿜을 때 다소곳이 고개 숙이며 자아를 숨긴다. 각자 풀들이 푸르름으로 합치되지만 잎이 잘려도 맨몸으로 열매 맺는다. 자연의 통섭이 녹음으로 채색해도 어린 속은 그 속에 보편성을 기르고 있다. 씨앗으로 평범함을 허물고 영속하고 싶어 조용히 뿌리내린다. 보랏빛 털로 위엄을 흉내 내지만 지나는 길손 눈길 하나 없다.
<위사진 포털 카페 남해군사랑 조혜연제공>
원래 말이 없던 건지 풍찬노숙에 익숙한 자신들 언어를 인간들이 알 수 없다. 속마음을 알지 못하면서 자연을 노래하고 색에 취한 나상들은 이성도 없다. 높세 바람 문풍지 울릴 때면 인고하던 마음 세상구경 하고 처녀 앙가슴 사이 땀구슬 또르륵처럼 흘러내리는 비 기다린다.
엉겅퀴는 제 갈 길을 가면서 그루터기로 돌아선다. 거세당하여 볼품없는 잡초로 우거진 세상 속으로 사그라진다. 태조는 비질하듯 잘 젖은 붓으로 개명해서 저쪽 대안에서 신분 상승해도 침묵으로 연약한 고개 숙이고 있었다.
뿌리 헐겁게 오늘도 비단결 금산에서 시간을 뛰어 아득하기만 한 대안으로 흘러가고 있다. 화려함은 멀리하고 결코 얍삽하지 않을 봄을 스스로 기약한다. 벼슬도 마다하고 음지에서 자아를 온몸으로 절규한다.
2009.06.13 11:50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