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
누구는 감꽃을 보니 감꽃 목걸이 해 주던 옆집 여자 아이 생각이 난단다.
어제 뉘엿뉘엿 햇살을 등진 퇴근길 골목에서 담 밖으로 뻗은 감나무 가지에서 감꽃이 떨어져 있었다. 노란 왕관은 하염없이 콘크리트 길바닥에 마냥 배를 내밀고 누워 있다.
이른 아침 옆집으로 감꽃 주러 갔던 기억에 하나 집어 맛을 보았다. 그러니 지나던 아이들은 이상한 아저씨로 보이는 모양이다.
은은한 달빛 연노란 등집 모양의 감꽃은 해거리를 하는 바람에 많이 떨어진다. 아니 짙푸른 포대기에 쌓인 등불 그건 일렁이는 바람에도 속절없이 미끄러진다.
이전처럼 떫은맛이 덜하고 단맛이 많이 난다. 그러고 보니 남부 지방에는 단감이 많아서 꽃에도 그 맛이 베어 있는 듯하다.
감나무가 많고 어린이가 없는 집일수록 앙징맞은 감꽃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절반은 주린 배 채우고 절반 그걸 짚에 꿰면 목걸이가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집안에도 감나무가 세포기 있었다. 감꽃은 물론이고 떫은 감을 먹고 흰“난닝구”는 늘 짙은 보라색 얼룩을 자랑했다. 그때는 배고픈 아이들이 왕소금에 찍어 먹는 점심 대용이었다.
아스팔트 위에도 개밥그릇 위에도 왕관임을 부인하고 살포시 내려앉아도 세월을 초월했다. 아까워 하느라 세기만 하고 선반에 두었다가 하교 후 내어먹었다. 마치 봉창에 발라 둔 씹다 만 껌 먹듯.
어머니 저고리 빛이 이 색이었지. 감나무 밑 장군이 위는 어머니 화장실이었고 그곳엔 감꽃도 탁샙이도 앉아있었다.
정처 없는 높새가 대문소리 내며 감나무를 훑는 날 저고리 빛으로 노을빛을 더했다.
먼지 묻을까봐 살살 쓸어 담으면 금방 손이 물들 것만 같았다. 감꽃 향이야 잊혀졌지만 어머니 눈물 같던 자태는 아이 가슴에 영원히 남았다. 누가 볼세라 나만이 간직하고픈 쓸쓸한 기억에 감나무를 올려다본다. 소소함에서 감성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이파리는 초록되어 흐르고 연약한 꽃은 가슴 열고 하늘 본다. 맺힌 한 이슬 털고 유색으로 소복히 앉았다. 아무 말없는 왕관으로 슬픔 잠재우며 조용히 내 마음에 졸고 있다.
아침 일찍 삽작문 들락거리는 아이들이 귀찮은 집은 오지 말라고 했다. 마치 70년대 TV가 없어 옆집으로 보러 가면 귀찮아하던 주인 모습과 같다. 오늘도 목이 마르다. 멀고먼 인고의 실한 감이 올 때까지.
2009.05.15 15:57 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