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재떨이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27년이 되었다. 특별한 배움도 인물도 없이 연로하기만 했던 아버지 모습이다. 항상 소꼴을 잔뜩 지게에 지고 논두렁을 걸어오시는 모습은 오래된 영화처럼 기억에 남았다. 중학시절 4촌 누나가 타던 빨간 자전거를 사주셨기에 필자는 신이나 여기 저기 타고 다니다 금방 산 양철 물뿌리개를 자전거 바퀴로 망가트려 참 많이 혼이 났다.
그 때가 바로 73년 가을이었다. 양파를 논에 심기 전에 모종을 한다. 곱게 상판을 만들고 매일 저녁 답에 물을 준다. 때문에 양파 모판은 도랑가나 급수시설이 있는 곳에 만든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물뿌리개였다.
긴 겨울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새끼 꼬는 소리가 들렸다. 늘 긴 담뱃대로 놋재떨이에 담배 터는 소리도 함께였다.
송아지 팔러 현풍 장 10리길을 걸어가면 아버지는 논길 저쪽에서 천천히 걸어 왔다. 송아지가 팔린 어미소는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몇 번을 뒤로 돌아보고 집에 와서도 밤새 울었다.
돌아가시던 해 누워 계시면서도 대학 1년 방학에 객지로 돌아가는 아들을 보려 병석의 아버지는 문을 억지로 열고 잘 가라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긴 여운인 재떨이에 곰방대 터는 소리와 함께 재떨이를 유품으로 남겼다. 서재 한 곳을 장식하는 녹이나고 오래된 재떨이는 아버지의 숨결을 남긴 유일한 물건이 되었다.
새끼 꼬는 기계는 남해에서 처음 보았다. 역사관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새끼가 어디에 사용되는 것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새끼 꼬는 기계 자체가 이해 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겨울 이른 새벽 옆방에서 들려오는 담배재 터는 소리와 함께 사르륵 사르륵 긴 새끼 꼬는 소리는 이제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았다. 그리운 아버지의 모습만큼. 거칠고 굵은 손마디에서 나오던 따뜻한 온기는 이제 느낄 수 없다. 그 긴 여운 어떤 글로도 표현하기 힘들다. 아이들에게는 컴퓨터 자판 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2009.05.24 12:04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