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이야기
어떤 글에 “앞으로 하지 말자”는 말에 “그럼 뒤로 하면 되지” 란 어물전 주인 말에 “뒤로 하고” 고등어를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고등어를 얻어 나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글을 읽고 『감자』의 복녀가 몸 준 댓가로 돈 3원을 받거나 다른 여편네가 감자 몇 알을 받고도 자랑하는 것을 보면 먹는 것에 대한 갈증의 표현은 대단했다. 어찌보면 성적 욕망을 식욕으로 대체한 카타르시스이기도 하다.
공지영은 『고등어』에서 널 부러져 있는 고등어의 실루엣을 자극적으로 묘사했다. 갓 구워낸 고등어의 노릇한 속살이 혀 위에서 녹아내리고 있다. 그만큼 섬세한 표현력이 독자들의 몰입을 시킨다. 명우에 대한 가련한 연민과 노은림의 현실에 몰입하며 식사도 거르게 했다. 80년대식의 사랑이 마치 이루지 못한 추억을 자연스레 회상되어 과연 책의 매력을 알고도 남았다. 우리가 관광 지도를 보고 맛집과 좋은 숙소를 찾는 게 얼마나 하릴없는지 깨닫는 것은 경험이 문제다. 지도에는 산천의 향내도, 바다의 소금끼 짙은 바람도 느낄 수 없다.
벽문어(碧紋漁)는 고등어 옆구리의 무늬로 붙인 이름으로 자산어보에 있다. 고등어란 말은 뚱뚱하다고 붙여진 말이다. 살찐 고등어가 사실 먹을 것도 많다. 누군가 갈치보다 고등어가 좋다는 말도 살도 많고 먹기 좋은 탓도 있었다. 바다의 보리란 말도 있다. 공부를 많이 한 물고기란다. 소금을 덮어 쓰면 자반이고 간재미이다. 안동식 간재미, “안동 간고등어”는 보통 유명세가 아니다. 산울림은 목말라 연 냉장고에 절여진 고등어를 보고 음상을 표현했다. 중견시인 박종엽은 「고등어 단상」이라는 시에서
영혼까지 구워 버릴 기세의/ 촘촘한 석쇠는 숯불 위에 신이 나서/ 제 살이 타는 줄도 모른다/촘촘한 석쇠는 숯불 위에 신이 나서 /제 살이 타는 줄도 모른다/ 잠시 안식의 기도를 위해 /몇 줌 /굵은 고향소금이 뿌려지고
속살에 눈물 저민/ 조금 남은 영혼까지 지글거린다
<포털 다음카페 「열린바다」에서 일부 인용>
고등어의 처지를 ‘제 살이 타는 줄도 모르고 영혼까지 구워버리는 인간성 상실을 석쇠위의 고등어에 비유했다. 그가 노린 것은 그래도 살만 한 세상에서 영혼까지 팔지 말라는 염원을 현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산울림이 냉장고 속의 고등어를 노래로 세밀하게 설파 했다면 박종엽은 자신의 내면의 종교적 염원까지 석쇠위의 고등어에 담았다. 차라리 박종엽이 노리는 것은 세상의 인간성 회복일지 모른다. 막가는 세상에 고등어는 소금까지 덮어쓰면서 자기희생을 위해 불 위에 누운 자신을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5일장의 한 꾸러미보다 이제 마트의 한토막이 효율적이다. 이렇게 문학 작품이나 노래의 소재가 되었지만 이제 값이 비싸진 고등어가 1마리 만원을 호가 한다. 짚불의 고등어나 화로위의 고등어나 후라이(프라이)판의 고등어나 말이 없다. 양념을 덮어쓰고 갈비도 되기도 하니 물고기의 성골인가 보다.
다이어트한 꽁치는 뭔지 쌍놈 냄새가 난다. 고등교육을 이수한 고등어는 아무 곳이든지 자아를 실현했고 섹스 대가로 수준 높은 역할을 했다. 역시 배운 놈은 값을 한다.
2009.3.31.17.21 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