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우엉김치

책향1 2009. 3. 21. 12:02

우엉김치


우엉을 이제 구경하기도 힘들다. 어릴 적 밭 한 모서리는 “우붕”으로 불리던 우엉이 항상 지키고 있었다. 이 우붕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잎이 올라오면 쌈으로 일등이다. 다 자란 우엉 잎은 대마잎 만하다. 대마는 제법 멀리 떨어진 하천 부지에 아버지가 많이 심었다. 키가 당시의 필자 보다 훨씬 컸고 잎은 어른 손바닥 두 배로 유난이 크게 보였다.

대마를 심은 이유는 밧줄을 꼬기 위해서다. 지금은 이파리가 특별하지만 당시 아무 제약 없이 밭에다 심었다. 가을철이면 베어내 껍질을 벗기고 밧줄을 물레에 돌려 꼬면 필리핀산 밧줄보다 실하다.

우엉 김치는 다른 지역에도 있다고 하나 대구지방 김치의 일종이다. 만드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우엉 뿌리를 손질하고 약간 데쳐 손마디 만하게 자르고 엄지손톱만한 무를 양념과 함께 버무리면 된다. 약간 국물이 있으면 우엉 고유의 향과 맛을 더 맛보기 쉽다.

우엉 잎은 요즘은 보기 힘들어도 시골 쌈의 기본이었다. 일부러 맛보려 해도 찾기가 힘들고 쌈밥집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다. 대신 아주까리 잎으로 만족하기도 한다.

김치에 관련되어 필자는 지역적으로 2,000종류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인과 이런 대화를 나누면 놀라는 눈치이지만 사실 일본의 도시락 종류가 2만개가 넘고 “사케”로 불리는 일본 청주 종류가 지역 특산을 포함하면 약 2,000개 정도이다.

우엉의 경우 다른 영양가는 특별히 적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만  섬유소가 많아 성인들에게는 좋은 식품이다. 특히 은은한 그 특유의 향은 50중반의 필자 머리에 남아 있을 정도이다.

출신지가 다른 집사람에게 우엉김치를 부탁하면 엉뚱한 맛이 난다. 필자가 어설픈 솜씨로 한번 담아 보았더니 이건 김치가 아니고 소태가 되어 실패한 적이 있다.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은 환경이 바뀐 탓이다. 배고프던 시절의 맛이 나기를 바란다는 것이 무리라는 말이다.

시장에 가면 칡뿌리만한 우엉뿌리가 있지만 과거의 우엉은 큰 것이 고작 어른 엄지 굵기였다.

보기 힘든 우엉이 과거를 회상해보게 한다. 이제 어머니표 우엉김치는 영원히 맛을 못보고 솜씨 좋던 형수라도 좀 담아 보내주면 좋을 텐데 고향 한번 가기도 힘들어졌다.  


2009.3.21.11.57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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