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고추 튀김 생각

책향1 2009. 3. 13. 08:16

고추 튀김 생각


아침 일찍 시장 다녀온 집사람에게 고추부각 사왔냐고 물어보니 많이 있다는 의외의 대답이 들려 왔다. 어려울 때 험악한 직업도 마다않는 강한 집사람이 사실, 집에서 먹는 반찬에 대해서는 무관심해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업무상 주방에서 많이 시달린 집사람에 대한 약간의 배려였다.

어릴 때부터 필자는 거친 음식에 익숙해져 있다. 그와 반대로 집사람은 현대적인 음식에 길들여져 있다 할 수 있다. 어느 날 마트에 가서 제법 큰 깻잎 절임을 8천 몇 백 원에 사오니 놀란 눈치다. 시장에서 고작 몇 천 원이면 살 걸 비싸게 샀다는 의미이다.

가끔 음식에 대한 필자의 불만은 기본적인 음식 실력이 집사람이 약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익숙한 잘 담은 고추장과 위의 깻잎 절임이나 장아찌, 짭짤한 된장찌개, 생마늘을 넣은 무국과 각종 나물이 항상 좋다. 지금도 대구지방 음식인 우엉김치를 먹고 싶다. 하지만 돈까쓰니 샐러드니 피자니 뭐 이런 음식을 잘하는 사람에게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절임 종류는 기대하지 않았다. 

최근 직장을 쉬는 집사람에게 새로 생긴 옆집 친구로부터 필자의 입맛에 너무 맞는 고추를 쪄서 말린 부각을 한 웅큼 얻어 오고 또 다른 분에게서는 집에 담은 고추장을 한통 얻어 와서 입이 즐겁다.

간혹 고추장으로 시뻘겋게 비벼 먹는 필자에게 속은 무사하냐고 묻는다. 아이들도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시중에 파는 고추장도 맛은 있지만 너무 달거나 짜다. 그래서 요리 중 매운 맛을 노려  많이 넣으면 너무 짜지는 결점이 있다.

집에서 담은 고추장은 짜지는 않고 맵기만 하고 특유의 발효 맛이 나서 입에 꼭 맞아 일주일째 비벼 먹거나 찍어서 먹고 있으니 속이 후련하다. 라면도 이 고추장에 발라먹고 있다.

결국 얻어온 고추 튀김과 고추장은 같은 재료다. 뭐 제조 방법만 다른 고추 음식이므로 마치 고추장에 고추를 찍어 먹는 꼴이다.

이런 필자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라온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중 음식 환경도 예외는 아니다.

필자의 어머니는 저와 동생을 늦게 낳은 바람에 매우 연로하였다. 따라서 농촌에서 흔히 얻을 수 있는 채소로 여러 나물을 즐겨 밥상에 올린 탓으로 아직도  나물을 즐겨 먹고 있다,

봄이면 간혹 시골집 옆 세 그루의 가죽나무 순이 밀가루를 덮어쓰고 오르기도 했다. 고추도 가을 끝 무렵이면 억센 것이나 너무 매운 것은 밀가루를 입혀 큰 밥솥에 넣어 익혀서 간장에 찍어 먹기도 했다. 양이 너무 많으면 광주리에 담아 헛간 지붕위에서 말렸다. 이것을 겨울 내 기름에 튀겨서 먹었다. 이 무렵 많은 무는 나락헛간 옆 땅에 묻혔다. 이건 겨울 내내 무국이나 생채로 올라왔다.

겨울에 된장국과 김장 김치로 지새우며 간혹 올라오는 무생채나 국은 특별한 맛으로 남았다. 아직도 지역에서 젓갈이 많이 들어간 김치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대신 시금치나물을 위시해서 무생채라도 실컷 먹어보고 싶다. 그것도 맛있는 고추장에 쓱쓱 비벼서.


2009.3.13.08.11 남해  

 

난 아직 요런 게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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