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겟또(스케이트) 회상
스케이트라면 김연아 선수가 타는 날이 선 양식이다. 시켓또라면 어릴 적 나무 판자 등으로 못을 박아 만든 앉은뱅이 스케이트다. 가끔 여러 개의 못을 박고 고무줄로 동여맨 지금 타는 스케이트 모양도 만들기도 했다. 이 발 시겟또는 발만한 판대기에 밑에 자그마한 각목을 대고 철사를 덧붙인다. 양옆으로 못을 박아 고무줄로 발을 고정시키면 훌륭한 신식 발스케이트(?)가 탄생했다. 앞으로 나가기 위에서는 앞부분에 못을 연달아 박아 못 대가리를 이용한다.
어른 들이 만들어 주신 시켓또는 모양도 좋고 잘 나갔지만 필자에게는 바로 위의 형이나 어른들이 만들어 준 적이 없어 손수 만들어 타고 다녔다.
유난이 추운 과거의 겨울에는 경리정리가 되지 않아 꾸불꾸불한 도랑이나 맨 논에 찬 물이 얼면 바로 얼음지치는 장소다. 가끔 얼음이 얕은 곳에서는 벼를 베어낸 그루터기가 솟아 있어 달리는 데 방해꾼이기도 하다. 시케토 자체의 구멍에 밀고가기 위한 막대에 박힌 못에 꼽아 어께에 매고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걸리면 보리밭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왔다.
동무들과 하루 종일 시겟또를 타면서도 묘한 경쟁 심리로 빨리 달려 보려고 일부러 못을 밖은 막대를 길게 잡는다.
가끔 물에 빠지면 집에서 혼나는 것이 두려워 마른 소똥을 모아서 불을 지피고 양말이나 옷가지를 말렸다. 필자의 고향이 대구시 낙동강 주변의 현풍이라 한국전쟁에 낙동강을 경계로 최후의 방어선이었으므로 격전지였다. 초등학교 뒤의 대니산 정상 부근에는 당시에 판 참호도 많이 남아있었다. 가을 소풍에 그곳에서 아이들 키만 한 녹슨 포탄도 있었고 참호에 들어가 놀기했다. 돌아올 때는 도시락을 보자기싸서 허리춤에 차면 반찬통 딸랑거리는 소리는 유난스러웠다.
소똥을 모아 불을 피우다 보면 펑하는 소리에 놀라 혼비백산했다. 도랑가에는 소총탄을 비롯한 무수한 크고 작은 총알이 있었다. 그것들이 소똥과 함께 불에 들어가서 터지는 소리였다. 소총탄은 소리가 별로였지만 기관총알이라도 들어 간 날이면 동네까지 들릴 정도로 소리가 컸다.
방송에서 아프리카나 히말라야에서 말린 가축 똥으로 취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무슨 일인지 과거 일이 회상 되었다. 도시 출신들은 잘 이해 못할 이런 일도 짐승의 배설물이란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말려 놓으면 냄새도 없고 화력 또한 기가 막힌다. 소똥 말린 것은 가스나 기름처럼 와락 타지않고 은근히 타는 것이 가장 큰 장점. 유류가도 폭등하는 시기에 다 잊혀져가는 아련함이 남았다.
어른들 몰래 시겟또를 만들려면 우선 제법 굵은 각목이 필요하다. 헛간 초가지붕에 얼기설기 엮어져 있는 각목이 유용하다. 집이 아닌 헛간이나 뒷간에는 서까래와 함께 밑에서 다 보인다. 그걸 빼내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굵은 철사를 앞부분을 구부린다. 각목은 앞부분은 45도 정도로 잘라내고 구부린 철사를 중간 부분에 박는다. 각목의 뒷부분 철사는 구부리고 못으로 양 옆을 고정시킨다. 두 개를 만든 다음 윗부분은 판대기를 적당히 대고 못으로 박는다.
동력을 얻는 막대기 부분은 한쪽 끝에 큰 못을 박고 못 대가리 부분을 잘라낸다. 얼음에 잘 박히게 이것을 송곳처럼 갈면 완성된다. 민둥산에 나무가꾸기를 강조 할 때 동무 한 녀석과 인근 산에 가서 적당한 아카시아 두 그루씩을 잘라 보리가 자라는 논을 가로 질러 질질 끌며 가져왔다. 아직 자르지 않은 가지로 마른 논에서는 먼지가 뽀얗게 일어났고 결국 지나던 어른들에게 들켜 꿀밤을 맞았다. 나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시간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에 식목일이면 나무심기를 위해 주민들이 동원되었고 어른 대신 필자도 두어번 간 적이 있었다.
시겟또 친구 녀석도 교통사고로 간지 벌써 수년 이제 리조트에서 플라스틱 시겟또에 앉아 경사지를 내려오는 짓밖에 하지 못한다.
2009.3. 14.12.30 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