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뿌리 이야기
배추뿌리 익는 냄새를 아시는가? 요즘 젊은이들은 상상이 어렵다. 경험을 할 기회기 없기 때문이다. 어디 배추 뿌리를 익히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래기 국을 만들기 위한 배추 익히는 냄새는 있다. 최근 벌어진 배추 봄동과 관련된 요리가 텔레비전에 자주 나온다.
50 넘은 분들도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아시는 분도 모르시는 분도 있을 게다. 필자의 경우 초겨울 해가 서산을 기웃거리면 소죽을 끓였다. 난방도 하고 초식동물인 소에게 소죽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지금의 봄동 같은 즉 가을 걷이 끝머리에 밭에 너부러진 김장에 별 쓸모없는 배추들을 모아 소죽에 넣어 끓이면 가끔은 뿌리도 같이 들어가 진한 뿌리 익는 냄새가 온 집안에 날린다.
필자는 주점에 가서 안주로 나온 생 배추뿌리를 볼 때마다 어릴 적 맡은 배추뿌리 익는 냄새가 떠오른다. 가끔 큰 뿌리가 들어가면 칼로 베어서 뜨거워 호호 불며 먹던 기억은 또 다른 당시의 정경이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막걸리나 정종을 소죽솥에 넣어 데우기도 했다. 술을 데우려면 마땅한 장치가 소죽솥이다. 술을 주전자에 담고 가스불이나 짚불을 붙이기는 곤란한 탓이다.
주점에서 안주로 가끔 나오는 배추뿌리는 식용으로 따로 기른 배추다. 다시 말해 뿌리용 배추 종자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과거의 배추 뿌리나 무 뿌리는 너무 매웠다. 배가 고파 먹으면 그 매운 맛에 금방 방귀가 나오곤 했다. 과거 무의 경우 윗부분의 푸른색이 있는 부분이 덜 매웠지만 그 부분은 너무 적었다. 배추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뿌리부분이 너무 작고 배추는 너무 매운 맛이 강했으므로 익혀 맛을 보면 달작지근하고 특유의 진한 맛이 났다. 최근 집에서 요리하기 전의 무를 잘라먹어보면 흰 부분이나 푸른 부분이나 맵지 않고 달다.
수박을 보면 어머니는 필자가 먹다 버린 수박껍질에 무려 5cm가량 되던 흰 부분을 숟가락으로 파내고 사카린을 넣어 먹곤 했었다. 그리곤 나머지는 소먹이로 갔다. 지금은 종자 개량 탓으로 수박의 흰 부분이 2cm 정도밖에 되지 않아 수박이 잘 부서지기도 한다.
언젠가의 가을 일본인 두 명과 불적에 오르는 산 어귀 채소밭에는 한복 입고 허리를 질끈 동여맨 여성 허리 같은 모습의 허연 무가 보였다. 동행한 후배 녀석이 아무렇지도 않게 잽싸게 한 뿌리 뽑아서 엄지손톱으로 껍질을 벗기고 필자와 둘이 히히덕 거리며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반대로 산 정상의 유적지 부근 민가에서 대나무 마루에 늘어둔 곶감용 감과 감 껍질을 본 일본인 호기심에서 조심스레 꼭 손마디만한 감 껍질을 집어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필자가 물끄러미 보니 그 일본인 얼굴이 새 빨갛게 변했다.
남의 밭 무는 태연하게 그냥 뽑아 먹고 감 껍질 먹는 일본인은 얼굴을 붉힌 모습에서 일본인과 한국인의 사고 차이가 표출되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배추뿌리 익힌 것을 먹어보라면 도망칠 것이다. 아님 썩은 냄새난다고 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그것이 필자의 가슴에는 아련한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은 것은 무슨 사유인지. 배가 고팠던 탓이다. 간식거리가 없던 황량한 농촌의 겨울 그 겨울에는 생쌀이 유일한 간식거리였기 때문에 필자에게 무시 못 할 강한 냄새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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