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남해 노도에 가니

책향1 2009. 1. 4. 14:33

*참고;  이 글은 남해 섬 중의 섬 노도를 간 느낌을 적은 글이고, 이 노도는 서포만필, 구운몽으로 유명한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 입니다. 남해섬 벽련포에서 10분 가량 배를 타고 들어갑니다. 구운몽은 어머니의 바람에 맞춰 하룻밤만에 적었다는 소설입니다. 강화도 피난 길의 배위에서 태어난 서포는 어릴 땐 이름이 선생이었습니다.  사친시로 어머니에 대한 애타는 마음도 표현했습니다. "보공"은 관속을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작자-

  

남해 노도에 가니

 

 

 


작은 유리 알갱이 포말은 어디로 사라질까 무한 변화는 인간 속을 말하지만 그보다 얕은 물결 속 포말은 냄비 속의 국이 끓는 듯 나왔다 사라진다. 오래된 병풍선화로 봉긋한 모습은 눈에 잘 들어온다. 비리함을 애써 피하며 어선에 오르니 쪽 푼 물은 가는 길을 막아선다. 하늘에도 흰 포말이 뭉게뭉게 있건만 지상의 포말보다 자유롭다. 대양위의 돌기가 정처 없는 흰 병풍에 가려 홀연히 사라지곤 하지만 철탑은 여기가 노도임을 알려준다. 커다란 돌과 거목은 오래된 신물로 센 바람을 막아서며 오는 이 없어도 마냥 즐겁다.

바다에서도 산에서도 가는 길 막는 이는 미물들이다. 알기 어려운 잡초들은 정처 없는 유객들의 발길을 부여잡고 생채기를 남긴다. 거칠 것 없이 바다를 건너온 바람이 자신들의 투명을 인간들에게 알린다.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선 홀홀 나목 배롱나무 추워보인다. 그래서 양반집을 가까이 했다. 자귀나무는 그윽한  포옹으로 금술을 자랑하고 있다. 연륜을 자랑하는 큰 느티도 온몸으로 옛 얘기를 채근하며 한 몫한다.

사친으로 우짖는 사람이나 어디서 온지 모를 풀들도 서로를 보듬고 외롭지 않음을 말한다. 철썩  허리 때리는 소리에도 묏등의 소나무는 찬 바람을 여과한다.

저 밑의 갯벌레가 소리 없이 해초 사이를 누비듯 인간들은 선인들의 깊은 학문을 대가도 없이 기웃거린다. 쓰러질듯 장난감 같은 작은 학교 유적에서 보니 근육질 팔뚝이 춤을 추고 고기들은 자맥질한다.

어부들은 소리 큰 배를 몰고 간다. 찬 겨울바람도 문풍지 우는 소리 남기고 노를 저어 멀리 떠난다.

포구에 뒹구는 소주병 남기며 옛일을 기억하지만 모정을 그리워한 효심은 아직도 귓전에 남아 요즘 문객들의 피 토하는 시구로 남아 허공을 맴돈다.

아무리 불러도 모자라는 어머니는 자식이 목 탈까 도리어 걱정하는 애심으로 바라본다. 누구랄 것도 없이 글이라도 글적이고 싶을 때 하루 밤 만에 그린 세계는 어머니의 열독을 다 채우고도 남음이라. 단심은 중심에  효심이 있고 어머니는 어느 때나 쇠보다 강하다.

 배위에서 난 몸이 대양은 집이요 고향이었다. 눈물로 어머니 보공도 어려워 시로 채운 수백년, 후세들이 읊조리니 그 남음이 대양으로 넘치리라. 이제 대양을 침대 삼아 편히 쉬지만 몇 세기가 지난 그 때도 저 바다는 저렇게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을까?

산 어귀의 초옥에서 목마름은 우물에서 달래며 먼 북쪽하늘 바라볼 때 바다는 기다림의 미학을 알렸다. 범부의 고행으로 편하지만은 않은 형극의 길을 파도들은 미리 깨달았다. 남해의 한 모퉁이 금강의 빛으로 빛낸 400년. 차라리 범부이기를 거부한 흔적을 부여잡고 예를 논한다.

창해보다 깊은 효심을 흰 포말들이 스스로 몸을 부셔가며 말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길은 가지 말라며 남보다 먼저 터득한 길을 글로 표현하며 차라리 나를 달랬다. 글은 몸을 인내하게 했고 마음을 표현하게 했다.

허허로운 생각 잊혀 질 때  성현도 떠나고 8선녀도, 구름도 노도 위를 지나간다. 500년 사직이 금산을 수놓아도 생명을 깃들인 당대유학은 이곳에서 정신이 잠들고 있다. 세찬 바람에 절대 없어지지 않을 이야기로 저 논두렁 저 바다에 새겨 놓았다. 오늘도 창해는 저렇게 쉼 없이 들락거린다.    

 

2009.01.04 14:33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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