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의 세상읽기

평론집 '화해의 시학" 중에서

책향1 2008. 11. 13. 15:24

<한맥문학> 7월호에서 이러한 관점을 설정하고 작품들을 살펴보면 김용엽의 「序詩」외 2편과 장영은의 「참회, 그리고 신인상 당선시인 강문종의 「겨울 단상」외 1편, 김동진의 「돌과의 산책」 외 2편이 특히 관심을 갖게 한다.


한 줌 바람이

낙엽으로 떨어진다

풀벌레 목쉰 소리

풀잎에 옮겨 앉아

긴-밤

사루고 나면

찬 이슬로 흐른다

밤새 귀에 젖던

마른 바람소리

지워질 듯 지워지지 않는

한 올 인연은

하늘 속에 뿌리내려

그 사연

달빛에 젖어

찬 이슬로 영근다.


김용엽의 「바람」전문이다. 이 시는 「序詩」와 함께 시인의 존재를 맹렬하게 확인하려는 의지로 차있다. ‘지워질 듯 지워지지 않는/ 한 올 인연은’ 어찌보면 실재의 인간은 나약하게 삶을 형성할 수밖에 없지만 오늘도 ‘풀벌레 목쉰 소리 / 풀잎에 옮겨 앉아’서 밤새도록 살아있음을 ‘찬 이슬로’ 확인하고 있다.

「序詩」에서도 ‘항시/ 그 遂意한 高調앞엔/벽이 놓여/門 은 먼지가 앉아있었다’고 시적화자가 진술함으로써 인간이 처해있는 실재 공간에서 ‘벽’과 ‘먼지’가 ‘항시’ ‘그 遂意’를 방해하는 존재를 예리한 시인의 통찰로 주시하고 있다.


나는 그 벽에 새겨진 감정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무너질 벽을 기다리며 정을 갈아

마지막 남은

나의 遺憾을 새겼다.


이렇게 김용엽은 「序詩」셋째 연에서 인간의 존재를 시인하면서 어떤 기원의 욕망을 (마지막 남은/ 나의 遺憾) 추구하면서도 그냥 안일하게 기다리지 않는다. 그는 ‘정을 갈아’야 하고 ‘제거하는 작업’을 계속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연속되는 ‘작업’들이 끝내는 ‘외로운 벽은 세워지고 /다시 허물어지는’ 화자의 진실로 귀결된다.

김용엽이 「바람」에서 존재의식의 확인이라면 「序詩」는 확인된 존재의 지속을 위한 기원이다. 그리고 고요에서는 ‘한갓 겨울나무를 기르듯/또 몇 날이나 지새우며 앓아야 할지’라고 첫 연에서 의문된 종결어미를 구사함으로써 인식된 존재에서 번민의 함성을 무언으로 제시하고 있다.


화해의 시학(김송배 지음, 국학자료원 간 ) 463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