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은행줍기

책향1 2008. 11. 8. 13:18

 

 

은행 줍기


어떤 TV프로에 "은행털기"로 가평군의 은행나무 털기 작업을 소개했다. 영화 제목도 무시무시하게 무슨 습격사건이란 제목을 붙이는 판국에 방송국의 기지가 재미있었다. 은행나무가 많은 지역만큼 영업적으로는 근방도 못 간 은행 줍기를 했다. 며칠 전 죽어버린 대형 백목련이 아까운 역사관 앞에 두 그루가 있었다.


 물론 대형 모과나무도 대칭으로 두 그루가 있다. 이 모과나무에서 떨어진 비교적 작고 샛노란 모과가 비 내린 잔디밭에 굴러 떨어져 있으면 마치 들판의 새알 줍기처럼 주워 사무실로 들고 온다.


공해에 무척 강하다는 은행나무도 여기 바닷가에서는 무덤처럼 흙을 돋우고 심었다. 매립지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옮겨 심은 백목련도 흙을 돋우고 그 위에 심었지만 여기서는 마지막 유언장처럼  희디흰 꽃을 한번 피우더니 그루터기만 남겨두고 둥치가 잘린 채 화물차에 실렸다.


 필자는 언제나 말없이 그늘을 주는 나무가 좋다. 어릴 적 당산나무에 올라 굵은 가지에 가다랑이를 벌리고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고 최신 품종의  포도나무를 형님집에 심어뒀더니 언젠가는 그것이 어른 키가 넘을 정도로 자라 뿌듯한 느낌도 있었다.


 시골 마을 뒤 너른 논에는 당시 경상북도 임업시험장에서 뿌린 조림용 리키데다 소나무 모종을 보았다. 마치 양파 모종만한 것을 다 옮겨가고도 일부 어린 것들이  남아있었고 아버지는 선산에 심는 다고 부지런히 모으기도 했고 그 결과 선산은 우거지게 되었다.


 길가 집인 우리 집 연도에 측백나무를 심은 아버지였다. 잘 자라지 않고 기껏 울타리용 정도인 줄 알았던 측백나무는 어린 필자의 세배가 될 무렵 아버지는 저 세상으로 가셨다. 결국 그 나무들은 베어져 리어카에 소가 끌 수 있도록 하는 나무 정도로만 사용되었고 종국에는 길 확장으로 집도 사라지게 되었다.  


토요일 오늘 잔뜩 찌푸린 날씨에 비가 오락가락하니 관람객이 전무하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이파리가 정염을 토한 지 오래되어 가지만 남은 은행나무 밑을 살피니 자기 보호용 외투를 덮어 쓴 은행들이 잡초사이로 보인다.


 은행잎의 약리 작용을 이용해 국산 혈행 개선제가 나온 지도 오래다. 은행 열매의 효능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냥 비 맞으며 잡풀 속에 떨어져 방치되는 몇 알도 아깝게 여겨져 주방을 뒤져 나오는 비닐을 들고 주어 모으니 봉투의 반은 찼다. 필자가 자란  동네 인근에 은행나무가 없어 속성을 잘 모르고 옆 동네 초등생들의 "* 냄새 난다"는 말은 잘도 기억된다. 과연 그랬다.


 아주 심하지는 않지만 마치 동물의 배설물 냄새 같다. 이는 식물들의 자아 방어 본능이라 할 수 있다. 담배 잎에 니코틴 성분이 들어 있는 것도 자기 방어본능이다. 사람은 해로운 니코틴을 담배로 연일 들여 마시지만 원래 담배나무 자체의 방어기전을 인간이 해로운 줄도 모르고 이용하고 있다 해야 한다.


 심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은행 열매 다섯 개를 수도를 틀어놓고 비벼보니 덜 말려서 인지 껍질이 문드러지지 않고 뚝뚝 떨어진다. 봉투에 든 은행들을 며칠을 두고 좀 썩혀서 비벼야 열매 추출이 쉬울 것 같다.


역사관 앞의 모과도 은행도 보통 그것보다는 크기가 작다. 모과의 경우는 5분의 1 크기다.  이파리도 무성치 않은데 주렁주렁한 큰 열매를 기대하지 않았다. 이빨로 깨물어 보니 겨우 자국만 남을 정도로 단단하다. 여름철에도 무성하지 않고 열매 또한 작고 몇 개 달리지 않은 것은 염해 때문이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남해군 서상 스포츠 파크는 매립지이다. 지역의 경제 활로를 개척하기 위한  획기적인 발상으로 조성된 시설이다. 이 지역 한 가운데 남해 향토역사관이 존재하고 은행나무와 모과나무 역시 이 앞 광장에 있다.



은행나무는 스러진 시간 앞에 말이 없다. 빛바래고 시든 것들, 떨어져 시간에 날린다. 쌓이고 뒹구는 것이 나뭇잎만은 아니다. 무너지고 쓰러진 것은 저문 가을 하늘아래 허다하다. 공자가 은행나무단에서 제자를 강의한 이래 몇 천 년을 잡풀 우거진 눕고 스러진 폐교, 절터에 아득한 향기를 더해가는 은행나무도 인간 부침의 허망함과 혹은 텅 빈 들판에서 아련한 저편에서의 절절한 울림은 과거를 회상하고 되새김하는 위로 받는 인생 여정의 한켠이다.


 나무들도 바람이 세고 염해가 심한 인고의 세월을 거쳐 만들어 낸 창조물을 산 짐승도 아닌 한 점 중생이 슬쩍하는 이 가을의 풍치도 그들에게는 도둑놈 심보로 보일일이다. 그들은 말없이 말 많은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만물의 영장이란 자가 겨우 자신들의 발밑에 떨어진 자그마한 결과물을 줍는 모습을 보면 속으로 얼마나 웃을까. 가끔 나무도 인생 나그네의 눈을 다시 뜨게 한다.


은행(銀杏)의 어원은 열매가 먹는 살구같이 생겼지만 은빛이란 말이다. 


2008년 11월 8일 오후 2시 작성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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