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두 「혀」의 공방

책향1 2008. 11. 15. 14:19

두 「혀」의 공방


두 개의 혀가 문학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두 혀 중 하나는 유명 소설가 조경란 씨가 2007년 11 월에 발표한 소설이다. 또 다른 혀는 주이란 씨의 작품으로  주 씨는 이 작품을 2006년에 응모한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했고 조씨는 심사 위원이었다. 신인 작가 주이란 씨가 자신의 첫 소설집 <혀>와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을 통해 공개리에  조 씨의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주 씨는 조 씨의 장편 소설 혀(문학동네 펴냄)를 놓고 자신의 단편 소설 '혀'를 베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씨는 9월 26일자 프레시안 기고문 "저는 '영혼'을 도둑 맞았습니다"에서 조씨의 발언일지 등을 올려 조씨의 앞뒤가 맞지 않은 관련발언을 예로 들며 조씨의 부당성을 알리고 있다.

 조씨의 소설집 《풍선을 샀어》(문학과지성사)가 2008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현재 대산문화재단의 후원으로 미국 UC 버클리대학의 한국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3개월)에 참가 중인 조경란은 국제전화로 수상 소식을 통보 받은 뒤 "과장 없이 순수하게 기쁘다"고 밝혔다. 상징이 풍부한 시적(詩的) 문체의 소설들을 잇달아 발표해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2년), 현대문학상(2003년)을 수상한 데 이어 마침내 동인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수상작 《풍선을 샀어》는 8편의 각기 다른 단편들을 통해 현대인의 다양한 고독과 불안을 밀도 높게 다뤘다. 인물의 행동과 사건 중심의 단선적 구성이 아니라, 의미의 여백을 남기는 독특한 문체가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심사위원들로부터 받았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독자들의 궁금점과 의아함이 증폭되고 있지만 조선과 동아 일보에서는 의외의 소극적인 대처가 도리어 의문을 사고 있다. 한겨레에서 이 문제를 보도하고 있으나 정작 심사 위원이거나 동인문학상 수상자라는 관계 때문인지, 기존 소설가에 대한 예우차원인지 “엽기적인 표절”에 침묵하고 있다. 주씨의 주장에 조씨는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신춘문예 심사 때 주씨의 혀를 읽은 기억이 없으며, 자신이 장편 혀를 구상한 것은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라고 반박한다. 그 사실을 입증해 줄 주변 사람도 있다면서, 주씨의 주장은 오해가 아니면 나쁜 의도를 지닌 ‘홍보전략’이라고 일축했다. 아웃사이더의 시선으로 이번 공방에 대한 의견을 솔직하게 쓴 소설가 김곰치 씨는 기고를 통해  표절 쪽에 무게를 두고 있고 일반 네티즌 역시 대부분이 표절이라는 의견이다. 주씨의 의혹 제기를 놓고 두 거대 신문 뿐 아니라 당사자인 조씨와 문학동네 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정작 주 씨의 공개적인 의혹 제기에는 소극적인 대응이다. 이런 소극적인 대응 자체가 위에서 언급 한 바대로 의혹을 더하고 있다. 사실 당사자인 조씨 입장에서는 신출내기의 주장이 자신의 도덕성을 치명적으로 훼손하는 자체에 섣불은 대응이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하고 애써 무시하고 싶은 심정으로 보인다. 논리적인 주씨의 주장에 제대로 반박도 못하고 오히려 “조씨는 자신의 작품 출간이 앞서니 도리어 주씨가 표절햇다며 사과를 하면” 저작권 위원회에 출석하겠다는 해괴한 주장을 하고 있다. 

위의 두 신문이나 유명소설가로서 자신들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이 차라리 진실을 밝히는 사회적인 책무보다 더 중요한가 보다. 지난 대선 등을 통한 편파적인 보도를 본 많은 독자들은 양대 신문의 시대적이거나 사회적인 책무에서 회피하는 모습을 보고 신문에 대한 도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번 논란에서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형국이 조성되면 빠지려고 하는 철면피를 다시 보이고 있다. 또한 보수 기득권층이라 할 기존 문단의 침묵은 또 다른 도덕성 훼손이다. 누구보다도 표절에 대해 비도덕성을 설파하고 철저해야 할 문단이 기성 작가에게는 너무 오지랖이 넓다. 신인 작가의 주장에는 그냥 동네 밖에서 짖는 개 소리 마냥 방치하고 먼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하고 있다. 이런 일이 정작 강 건너 불구경해야 하는지 그 구겨진 도덕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 2005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된 권지예의 '꽃게무덤'이 표절논란에 휩싸였다. 단편모음집 '꽃게무덤'의 마지막 단편인 "봉인"이라는 소설이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박경철저,리더스북)의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라는 글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조선일보는 애써 표절 논란에서 도피하고 싶을 것이다.

도덕적 판단이 객관적 보편성이 모두에게 해당된다. 일부 인기 작가에게 적용하지 않고 대다수의 표절 사건처럼 묻혀버린다면 그 해독성은 앞으로 한국문단과 교육계 등에는 치명적이 될 수 있고 그러므로 지식의 도절 행위가 근절되어야 한다.

어디가도 한국은 지역색과 텃세가 문제다. 주씨를 기성문단에 도전하는 발칙한 신인정도로 보거나 신인의 재능을 무시하는 사회 텃세로서의 몰이해는 깡그리 없어져야 한다. 문단이 신인의 입장을 봉쇄하는 권력으로 통하지 말아야 한다. 10여 년 전에 구상을 했다는 변명도 “씨종자”를 도적질 했다는 것도 고루한 자존심을 위한 것이지 어느 곳에서나 사회의 건전한 도덕성 유지 노력은 없다. 그 만큼 한국사회가 도덕에 불감한 사회임을 증명한다. 사실 전반적인 두 혀의 문체를 비교하기보다 그 모티브를 착안했을 여지는 많다. 신인의 발칙한 착상을 도절하는 무감각은 기존의 명성으로 덮을 수 있다는 편한 생각일 수도 있다.  

그것도 자존심의 표현이라면 할 말이 없다. 속 시원히 시인이 없더라도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고 있는 상황 하에서 어설픈 변명도 회피는 다시 말해 침묵의 연장은 결국 시인한다는 말로 인도한다.

사람도 잡아먹는 세치 혀가 먹어치우는 혀이고 김기덕 영화에서는 뽑히기도 하고 여자의 음순이 뽑히지만 자기희생으로 사회모순을 막아보자는 상징적인 의미이기도 하고 맛도 보고 섹스도 한다. 결국 세치 혀가 옛말처럼 사람을 먹어 치울지는 두고 볼일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문학에서의 표절이 공론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지만 거대 신문들의 도덕성도 문제시 되어야 한다. 표절을 판단하는 근거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줄거리의 차용이 어느 선을 넘어섰을 때 표절로 볼 것이냐는 나름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분명한 표절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있고, 단순히 소재나 줄거리의 차용으로 표절의 오명을 뒤집어쓰는 경우가 어느 정도 구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심정적으로 약자 편도 이해하지만 동정식의 인터넷몰이는 마치 혀에 전기톱이라도 단듯하다.

 

2008년 11월 15일 16시 작성 남해

2008.12.5N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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