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新版 倭寇言論 讀賣新問

책향1 2008. 7. 22. 00:16

신판 왜구언론 요미우리신문

 

요미우리 신문은 대단한 신문이다. 인터넷이 발달하여 종이 신문이 밀리는 가운데서도 일본내의 보수 우익을 대변하느라 바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승엽이 활약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프로 야구팀도 잘 알고 있다.

신문 선전을 위해 일본 최초로 창립한  프로 야구단은 신문과 달리 일본의 야구의 최고 명문이다. 풍신수길이 임란시 조선을 공략하기 위해 머물렀던 오사카 성에 가서 역사적인 사실도 모르는 채 기념사진이나 찍는 것과 같이 이제부터라도 맹목적으로 거인팀을 좋아하지는 말 것을 권한다.

요미우리는 아사히 신문(朝日新聞)에 버금가 일본의 3대 일간지이다. 그중 편집 성향이 가장 상업적이고·선정적이다. 국익우선은 우리 신문들도 사정이 그러하지만 그 정도와 치밀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아사히와 비교하면서 어떤 이는 요미우리를 조중동과 아사히를 한겨레에 비교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견해를 달리한다.

물론 전체적인 틀에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앞에서 적은 바와 같이 요미우리는 일본내에서도 "상업적"임을 자타가 인정한다. 상업적이라는 말은 탐욕적이라는 말의 연장선상에 있다. 산케이가 철없는 신문이라면 요미우리는 상대적으로 어른스럽기는 하다. 철없다는 말은 일본내 우익이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정제되지 않은 기사로 대중 성향에만 맞추려는 신문이라는 뜻이다. 산케이와 비교해서 요미우리는 점잖은 편이기는 하다. 물론 전통과 판매부수 등 경상 수익이 월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신문이 선정적이라고 하면 권위지라 하기는  어렵다. 단말마식 선정 보도로 우선의 몰염치한 대중들의 기분풀이에는 알맞지만 읽고 나면  진리감과 사회의 보편적 도덕성이 이상하게 훼손되는 듯한 느낌이 많이든다.

마치 최근의 촛불 집회 원인 보도에 조중동들의 보도 경향에서 느낀 독자들의 답답함과 비슷하다.

이런 선정성은 선지를 비롯한 영국의 타블로이드는 우선 노란신문으로 독자들에게 각인이 되어 있으므로 기사 내용의 진정성까지는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양적인 "신문"이란 이름만으로도 우선 일반 대중들이 신뢰성을 보인다. 이는 80년대 초반 이후 지방에서 우후 죽순 격으로 생긴 지방지 중 일부가 신문이란 이름의 제호로 발간되지만 실상은 사이비 기자들의 온상이고 득세를 위한 발판이고 직업 세탁의 방편인 것은 널리 알려진 것과 비슷하다.

 물론 산케이 신문이 대중선정지는 아니다. 이러 기괴한 발간 스타일로 인해 신문의 생명이 연장되고 따라서 신뢰성도  첨부되고 한다. 다시 말해 자국국익을 위해서는 선정지보다 더한 역할을 해온 것이 일본신문의 주된 경향이다. 과거 JP가 일본 언론을 기피 했던 것은 그들의 탐욕적인 자국이익을 위한 언론 플레이에 능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일본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던 JP는 미리 간파하고 있었다. 언관 일체의 일사 불란한 일본의 행동거지는 '치고 빠지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독도 문제의 경우가 더욱 그렇다. 

산케이가 우익 대변지로 자임하는 동안 일본 정치인들은 특히 한국 관련 기사에서 산케이가 앞장 서주는 것이 한 없이 고마울지 모른다. 미리 협상에서 한국의 논리성에 의심을 가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렇지만 지나친 상업성은 고급 독자들이 외면을 하게 되는 결과가 있다. 지각이 있는 독자들이 노란신문을 읽을 일이 없고 식상해 하기 쉽기 때문이다.

요미우리는 이름 자체도 일본에서 과거 신문 형태의 목판본을 팔러 다닐 때 기사를 외치면서 판다고 해서 읽을 독(讀)에 팔 매(賣)자를 제호로 정했다. 그러다 보니 수려한 기사의 아사히 보다 장사꾼 기질이 남아 있다. 고리타분한 진리를 파는 것보다 적당히 독자들 정서에 맞춰 판매부수만 늘리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부수을 널리고 명성을 얻고 부터 산케이와 같은 완전 상업적이기 보다 논리성과 권위를 어느 정도 갖춘 기사에 대중에 영합하는 상업성을 적당량 가미했을 뿐이다.

 완전 상업적인 신문은 기사 내용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으므로 3대신문이란 권위에 알맞게 채색된 내용으로 독자들의 호주머니를 노린다.

YS가 우리의 외환위기를 일본 탓으로 돌린 월간 조선 기사 내용이 틀리지 않았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바로 독도문제로 "버르장머리" 발언 파문으로 반일 정권으로 각인되어 손을 보려던 참에 아무래도 국내 언론 보다는 국제적인 영향력이 큰 일본언론들의 한국 재정위기 보도가 점점 확산되어 신용경색을 불러 온 것이다. 여기서도 요미우리는 선린우호와는 거리가 먼 보도로 일조를 했다.

이점에서 일본은 총칼이 아닌 한국을 무너뜨릴 방안을 찾았다고 보여진다. 서로가 피를 부를 총칼 대신 언론플레이만 잘하면 또는 정보 조작만 잘하면 세계유일의 반일국가 대한민국을 무너뜨릴 방안을 찾게 되었고 좋은 묘안을 얻었다.

여기에 냄비근성의 국민성과 과거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우리 국민성이 큰몫을 했다. 아마 일본은 한반도내에 친일정권을 세우는 것이 목표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체의 내부 분열과 소모성 논란거리가 항상 필요하다.

저절로 논란거리가 생겨 망하거나 자체적으로 반일의식의 약화를 노리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면 독도나 역사 왜곡 등으로 건드려 들끓게 만들어 소모성 논란거리로 자멸의 길로 인도하거나 대일 협상력 약화만 노린다.이런 일은 임란시 순화공 등이 함경도에서 민중들의 협조로 왜군에 의해 생포되고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자체가 혼란스러울 때 그들은 교과서 왜곡을 하고 독도를 건드린다. 독도강탈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두고 국내가 혼란스러울 때마다 하나씩 파일을 열어 기름을 붓는다. 일본이 한국관련 사안을 만들 때마다 우리 국내 사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과 쇠고기 파동으로 어지러울 � 그들은 독도 문제를 들고 나왔고 요미우리는 고유의 언론 플레이의 일환으로 대통령의 발언 운운 하며 한국민의 자긍심 손상을 노리고 있다. 정부 대표인 주일대사가 일개 신문사를 방문해 항의하는 자체가 속좁은 그들은 우월성을 즐기며 내심 쾌재를 부를 지 모를 일이다. 그들끼리  미리 짜고 친 일이고 그 결과도 손바닥 보듯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국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일을 한 요미우리는 그 고약한 임란시의 잔인했던 왜구를 다시 보는 듯하다. 자국 외교 담당자의 부인에도 대통령의 말이 사실이라 우기는 것은 그 외교담당자나 왜구 신문 요미우리는 다 알고 있었다. 선린우호보다 강자 우선이 그들의 일상이다. 친절 속에 감춰진 그들의 비도덕성이 한국에 의해 전세계로 알려질까 두려운 그들이다.

왜구신문 요미우리는 태평양전쟁중 카미가제 특공대가 야마토다마시이(대일본정신)라고 외치며 미국함정에 날아든 것이라 했으나  사실은 대부분이 "엄마"하고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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