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는 일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한국인들은 가깝다고 여행 가며 쓸게 빠진 짓을 하고 있다. 대마도 관광객 80%가 한국인이다. 대마도가 한국령이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대마도와 관련된 우리 문헌을 살펴보면 세종실록에 "대마도라는 섬은 경상도 계림에 속한 우리나라 땅이다. 다만 땅이 몹시 좁은데다 바다 한가운데 있어 내왕이 불편한 관계로 백성들이 들어가 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자기나라에서 쫓겨난 일본 사람들이 몰래 들어와서 그들의 소굴이 되었다."는 기록과
동국여지승람(16세기) "대마도는 우리 계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 왜인들의 소굴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고 했으며 조선방역지도(1557. 명종12년)에는 한반도의 영토범위를 대마도까지 표시했다. 또한 조선팔도고금총람도(1673. 현종14년. 김수홍) 조선지도에 대마도와 우산도가 등장한다.
해동지도(1750년대. 영조의 명) "우리 영토는 백두산이 머리가 되고 태백산은 척추가 되며 영남의 대마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고 명기하고 제주와 대마도를 좌우에 나란히 그렸다.
1771년(영조 47) 남해로 귀양 온 유의양이 지은 남해문견록에는 대마도가 금성현 소속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국총도(1789~1793. 정조13~17년)에서 대마도가 중요한 비중으로 그려져 있다. 동국여지도(1710. 숙종36년. 윤두서) 대마도가 실제보다 크고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여지도서(1765. 영조36년)와 경상도읍지(1822. 순조22년 편찬), 조선전도(1846. 김대건신부 제작), 대동여지도(1860, 김정호) 등에서 대마도를 우리영토에 포함시켜 놓았다. 또 임란시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제작한 팔도총도에서도 대마도를 조선영토로 표기했다.
1419년(세종 1년) 6월19일 이종무장군이 병선 22척에 17,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대마도를 정벌했다.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시키고 도주를 태수로 봉하였다. 이날을 기념하여 마산시가 2005년 제정한 '제4회 대마도의 날'기념식을 마산시청 대회의실에서 개최했다.
대마도의 날은 2005년 일본 시마네(島根)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에 맞서 그해 마산시도 '대마도의 날' 조례를 제정했으며 이후 매년 이 행사를 개최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금년 '제 4회 대마도의 날' 기념식이 19일 열린 것이다
1436년 도주인 소우사다모리가 조선의 한 고을로 편입해 달라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해유록(18세기 초. 조선통신사를 따라 일본을 방문한 신유한이 기록함)에 "이 섬은 조선의 한 고을에 지나지 않는다. 태수가 왕실로부터 도장을 받았고 조정의 녹을 먹으며 크고 작은 일에 명을 청해 받으니 우리나라에 대해 번신(藩臣)의 의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이 우리땅임을 알려주고 있음에도 일본은 국내 혼란과 병탄을 틈타 1869년 판적봉환을 이즈하라로 지칭했다. 이후 1877년 메이지 정부가 나가사키현에 불법 편입시켰다.
건국직후인 1948년 8월 이승만 대토령은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다. 그해 9월 대마도 속령에 관한 성명 발표을 발표했다. 이듬해인 1월 8일 이승만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일본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다. 전쟁중이던 1952. 1월 18일 "인접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이승만 라인)에서 대마도 영유권 다시 주장했다.
1948. 8월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요구가 있자 요시다 내각은 항의를 하고 맥아더장군에게 이대통령의 요구를 막아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결국 미국의 맥아더사령부에 의해 대마도 반환은 거부되고 말았다. 마치 간도가 일본에 의해 중국에 넘겨진 것처럼 되었다.
1952. 1월 이승만 대통령선언이 있자 일본 정부는 학자들에게 대마도 연구를 집대성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여 대마도는 일본땅이라는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기 시작 했으며 대마도내의 한국관련 유물을 모두 일본 본토로 옮겨 갔다.
독도의 경우처럼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내미는 자료보다 대마도가 한국 땅임을 입증할 수 있는 사료가 훨씬 풍부하다.
독도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보다 대마도에 대한 한국인의 역사적 인식이 훨씬 깊다. 조선 시대의 유민 정책인 공도(空島)정책 탓에 조선이 대마도를 영토적으로 복속시킬 기회를 놓쳤고 독도의 일본령이라는 빌미를 제공했고 조상들이 남겨둔 영토를 후손들이 섬나라 왜인들에게 빼앗기는 부끄러운 현실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 교과서에 대마도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기술하며 우리 땅임을 명기해야 한다. 버젓이 우리 땅임에도 말한마디 못하는 사이 독도를 일본 땅으로 하기 위해 치밀하게 작업이 전개되고 있다.
독도 문제를 일본에서 거론 할 때마다 우리끼리 국내에서 소란이 일어나고 국력을 소비하고 있을 때 일본 지도자들은 술집에서 웃고 있다. "저래봤자 한 달만 지나면 그만이다." 며 한국인들의 냄비근성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없어 전쟁으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면 너무 일본은 호전적이며 국제 도덕성이 없다.
우리의 국력을 차분히 쌓으며 일본인의 미소 속에 감춰진 속내를 국제 사회에 알려야 한다. 바로 "국화와 칼"은 그들의 친절함 속에 비수가 들어 있다는 말이다 이런 사실을 국제 사회에 제대로 알리는 일에 국운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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