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복당문제의 명분과 실리

책향1 2008. 5. 7. 15:38

 

복당문제의 명분과 실리

 

 

명분과 실리라는 말이 나오면 필자는 유교사상을 떠올린다. 유사이래 우리 민족이 명분 쪽에 서왔다는 점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병자호란 때의 논란 등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그 단적인 예이다. 개막식을 한국이 차지하고 폐막식을 일본에 양보하고 한일월드컵 명칭을 우리는 양보받았다. 여기서 시청률 등 실리가 많은 결승전을 일본에 주고 우리는 얼마나 실효적인지 모를 "한일"월드컵 명칭을 양보받았지만 이 또한 명분싸움이었다. 이후  일본과 독일은 자국에서 "일한"월드컵이라 불러 문제가 생긴 적도 있다.

이뿐만 아니고 역사적으로 유교적인 가치 판단이 사회의 판단 기준이 된 현실에서 우리는 실리보다 명분을 쫓은 경우가 훨씬 많았다. 국난시에는 명분으로 인해 국민들이 도탄에 빠진 경우가 있다. 1592년 임란 후 45여년만인 1627년에 일어난 정묘호란 뒤 후금(後金)과 조선은 형제지국(兄弟之國) 문제나 병자호란 시 주화론자나 척화론자 모두 애국적인 결단을 노린 것이지만 서로를 탄핵하고 삼전도에서 곤룡포도 입지 못한 인조는 시키는 대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바닥에 두드리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항복식을 치렀다. 이때 인조의 이마에서는 피가 흘렀다고 하며, 청 태종은 단에서 내려와 인조의 머리 위에다 오줌을  갈겼다고 한다.

 일본인이 쓴 책을 보면 한국인들의 싸움이 결국은 나이 싸움으로 귀결된다는 점이 이상하다고 했다. 다른 원인을 제쳐 두고 나이 싸움은 결국 명분 싸움이다. 

명분 싸움인 나이 문제는 유교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누구에게나 통하는 말이므로 아무 잘못이 없더라도 "머리에 쇠똥도 안 마른 놈"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실질적인 이해 타산결과인 실리는 사실 명분의 타당성과는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실리 위주의 일본인들을 보면 항상 간사함이 풍성하다. 실리와 경제성 즉, 돈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할 듯이 다데마에의 친절을 앞세우는 일본인들의 눈에는 아마 한국인은 미련하게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곁불도 안 쬐는" 양반들 때문에 과거의  제례절차가 얼마나 복잡했고, 많은 시간을 요구했는지 잘 알수 있다. 결국 제례에서 허례허식의 낭비적인 요소로 남은 경우가 허다하다. 

정의로운 명분과 실리 중  명분은 언제나 우선이다.  일단의 명분은 거창하고 정의롭다. 실리가 없는 명분도 설 자리가 없지만 명분없는 실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명분은 아름답지만 허공에 머물 수가 있다. 위정자들은 항상 국민들의 명분 우선 요구에 응답해야 하는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인터넷 세뇌로 불려지는 광우병 쇠고기 파동에서 감상적일 수 있는 국민적 요구와  실리를 추구하는 목소리 중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궁극적으로 공무원들의 줏대와 관련이 있다. 독도 문제에서 역사적으로 명분이 있는 우리나라와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일본의 대처와의 싸움에서 국민들은 화끈하지 않은 정부를 나무라는 경우가 있으나 어차피 실효점령 중인 우리나라에 유리하다며 조용히 현상태를 유지한채 넘어가려는 외교력과 표피적으로 나타나는 국민 정서와는 분명 괴리가 있다. 하지만 궁극적인 실리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외교관계자들의 판단이 맞다면 조용한 외교를 이해해야 한다. 어쩐지 구차해 보이는 정부의 실리추구도 참을 때는 참아 보는 것도 현명할 수 있다.

최근 촛불 집회와 관련 집권층의 명분과 실리에 대한 처신은 문제점이 많다. 촛불 집회의 근본원인이라 할 수 있는 친박 의원들의 복당 문제와 관련 애써 회피하고 싶은 것은 이명박 정권의 명분이다. 메이저 신문들은 근본 원인을 제대로 보도하지않고 쇠고기 문제로 촛점을 돌리는 자체도 정권의 명분에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복당을 허용할 경우 개인적인 감정이 허용하지 않는 명분이 있지만 현실 정치가 불편하여 실리에서 마이너스이다. 기업 운영하듯 이 대통령의 밀어부치기가 정치에서 통하기 위해서는 많은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고 친박 복당이 그 시험대에 올라 있다. 그럼에도 명분만 쫓는 것으로 많은 실리를 잃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명분도 살리고 실리도 찾는 길은 최고의 선택이다. 하지만 상충하는 경우에는 명분을 적당히 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특히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한국정치에서 무조건적인 이명박식의 명분 찾기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일반 여론도 명분을 선택하기 쉽고 힘이 실리기 쉽다. 그러나 명분이 밥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리가 밥먹여준다는 엄연한 현실을 잘 구분해야 할 것 같다.  

 

  2008.05.07 15:38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익과 사감  (0) 2008.05.11
공안정국의 서곡이 울리나  (0) 2008.05.09
촛불 시위는 우파의 분열 신호  (0) 2008.05.05
박희태의원, 정신 좀 차리소.  (0) 2008.04.28
정치 보복과 선별입당,차기 지방선거  (0) 2008.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