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인의 변신과 결과

책향1 2008. 4. 23. 11:12
우리나라 정치인의 변신은 현란하고 국민들 눈에는 "택도 아닌"경우가 너무 많아 종잡기가 힘들다. 다시 말해  정서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변신으로 혼란을 초래한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이해할 만한 타당한 구석이 너무 없는 경우가 많앗다는 의미이다. 터무니 없는 변신으로 그 결과가 참담할 경우 국민들의 정서에 부합되기도 하고 통쾌감을 안긴 경우가 많다. 여기서는 필자의 기억 즉 필자와 같은 50대들의 기억에 남는 변신을 예로 들고자한다. 유신헌법이 등장하기 전에 집권 공화당에 반기(?) 또는 변신의 경우부터 시작해보자. 실미도 사건은 영화로 많이 알려져있다. 그 내용만 잘 알려 졌지만 당시 그 사건의 후폭풍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었다. 당시 공화당 4인방 항명사건은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오치성 내무부 장관에 불신임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71년 오치성 내무부 장관 해임안 통과는 오장관의 후견인 역할을 하던 김종필 당시 총리에 대한 '공화당 실세 4인방' 의 반란이었다.
당시 국회의 의석 분포는 여당인 공화당 1백13석.신민당 89석.기타 2석으로 함께 제출된 김학렬 재무장관과 신직수 법무장관 해임안은 부결됐는데도 오장관 해임안은 총투표 2백3표 중 찬성 1백7표, 반대 90표, 무효 6표로 가결됐다. 공화당에서 최소한 20표 이상이 이탈한 것이다.
이 항명사태는 김성곤 당 중앙위원장, 길재호 사무총장, 백남억당의장, 김진만 재정위원장 등 4명이 주도했고 이 사태 이후 이들은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탈당하는 등 정치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여기서 필자의 고향 출신 김성곤의원은 특유의 카이젤 수염이 뽑히고 말년에는 미국에서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그의 쌍용그룹은 현재 여러가지 상황으로 공중분해돼 있다. 길재호는 정계에서 은퇴하다시피해 초야의 이슬 처럼 이름이 잊혀져 갔다. 백남억만 이후 유신헌법이후 유정회의장 등을 했다. 김진만은 7선의원으로 국회부의장을 지냈고 현 최연희 의원의 지역인 삼척출신이다. 이들 중 결과적으로박대통령의 가장 큰 노여움을 산 것으로 보이는 김성곤만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했고 다른 3인은 변신하여 정게에 족적을 남겼다. 특히 김성곤은 신군부가 등장한 80년대 언론사 통폐합으로 싸용그룹이던 재구문화방송도 뺏긴 것이 쌍용그룹의 와해의 단초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이전에는 유신헌법에 반대하던 1978년 창녕출신  성낙현 의원의 여고생 성추문 사건이 있었다. 당시 라디오를 듣던 필자의 모친은 "망할 놈"이라 했다. 당시까지 언론이나 인터넷이 발달이 지금과 같지않아 전적인 라디오 발표만 믿고 의지하던 때였다.  저명인사들의 성추문은 금시초문 일 때였다. 그러나 그후 성추문 사건이 본질이 아니라 유신헙법 반대가 본질이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한국인들은 개인관계에서도 건방지게 보이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더우기 정치에서는 거만한 정권을 결코 용서치 않았다. 전두환 정권이나 자파 코드로 무장되었던 노무현 정권의 비참할 정도의  인기도가 말해준다. 최근 박근혜대표의 친박 연대 등의 당선자들의 복당요구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 결코 복당을 허용치 않으려는 대표적인 인물이 강재섭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이다. 그렇지만 탈당원인을 감안하지 않고 도리어 "낙선한 사람들 기분도 감안해야한다"고 망발을 하고 있다. 공천의 정당함을 부르짖던 자들이 국민에 의해 심판받은 사람을 당내 자파 또는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이들의 정국을 보는 이정도라면 2년 후의 지방선거에서 참패는 필연이다. 조갑제 씨의 지적처럼 당장 과반수 선을 무너뜨릴만한 파워를 갖고 있는 박근혜 전대표를 무시하며 그를 처량하게 하고 있다. 재삼 말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를 의견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다고 배척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개인적인 강재섭대표도 그의 위력앞에 도망간 전력이 있다. 이런 판국에 과거 노태우 정권하의 3당 합당 이유를 곰곰히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여소야대는 정권을 운용하는데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실감을 못하는 반증이다. 야합이니 뭐니 하면서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 3당 합당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권이 시작 초기 겪지 말아야 할 인사파동과 강부자 정권 소리를 들어며 도덕성에 결함이 생긴 가운데 다시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되면 결정적인 피국이 올지도 모르는 상황하에서 사감을 앞세운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희태의원, 정신 좀 차리소.  (0) 2008.04.28
정치 보복과 선별입당,차기 지방선거  (0) 2008.04.25
우려되는 정치 보복  (0) 2008.04.21
티벳은 중국이 아니다.  (0) 2008.04.20
강재섭과 정권의 비이성  (0) 2008.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