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티벳이라면 무엇이 떠오른는가? 중국의 변방 , 오체투지, 황량한 벌판, 세계의 지붕, 불교의 나라 등등 개인의 경험에 의해 여러가지 일 것이다. 최근 티벳 해방 시위 사진들을 보면 여러가지 문구가 있겟지만 "티벳은 중국이 아니다"는 문구가 효과적일 것 같은데도 전혀 이런 문구가 안보이는 점이 이상하다. 한국인들은 티벳 사태를 전해들어면서 광주 사태를 연상하지만 근본적으로 국내문제였던 광주사태와 국가간 문제인 티벳사태와는 동일 선상에 있지 않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티벳은 13 ~ 14세기에는 원나라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1750년에는 청나라 건륭제의 팽창 정책으로 보호령이 되었다.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한 후,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정권은 완전한 독립을 모색하여, 1913년에 몽골과 상호승인조약을 체결하여, 두 나라가 협동하여 한인의 공화정권인 중화민국에 대항하기로 하였다. 몽골에는 러시아, 티베트에는 영국이 무기, 차관을 제공하는 등 외부의 지원이 있었으나, 영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당시의 제국주의 열강 속에서 몽골과 티베트를 독립국으로서 인정하는 나라는 없었다.
신해혁명의 소식이 알려진 1913년, 라사를 점거하였던 청나라 군대가 격렬한 시가전 끝에 물러났으나, 그 이후에도 중국국민당 등의 중화민국의 역대정권과 군사적인 긴장상태가 유지되었으며, 티벳 달라이 라마 정부의 실효적 지배영역내에서는 어떠한 중국의 기관도 설치가 승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1940년 달라이 라마 14세의 즉위식에 참석한 중국국민당의 사절단은 의식 후에도 귀국하지 않았고, 1948년에 강제로 퇴거되기까지 라사에 계속 머물렀다.
제2차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군의 일원이 되었고, 영국령 인도로부터 이주해 온 영국군에 의해 갼세, 라사와 카무 지방 각지에 통신기지가 건설되었다. 이 기지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해방군이 티벳을 무력점거하기까지 영국군의 무선기사에 의해 운영되었다.
<사진1> 인터넷 다음카페 "발길이 머무는 곳"에서 인용.
하지만 티벳의 오랜 정치, 종교 합일의 농노 제도하에 국민들이 점점 고통받으며 불만을 갖기 시작하였다.청나라의 멸망 이후, 중화민국의 역대정권은 독립국으로서 존재한 티벳을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였으나, 북경정권의 시대에는 군벌의 혼전, 남경국민정부 시대에는 대일전쟁으로 독립을 주장하는 티베트에 대하여 압력은 행사하였으나 본격적인 군사적 침략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1949년 중국공산당이 내전의 승리로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고, 티벳의 전 지역을 목표로 1950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군사행동을 시작하여 티벳을 점령하였다. 1951년 이후,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해서 점령, 통치되고 있으며 많은 티벳인들이 정치적인 이유 또는 탄압을 피해 인도로 망명했다.
중국공산당정부는 티벳 국민에 대한 잔인한 탄압과 학살로써 티벳을 억압지배하였고, 1960년대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전역을 강타한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3,700개나 되던 사찰은 13개만 남고 모조리 파괴되었다.
이후 시짱자치구(서장자치구, 西藏自治區)가 설립되어 티벳인들에 대한 자치가 허용되었다. 티베트의 중국 귀속 이후로 망명을 떠난 티벳인들의 일부는 동화정책에 따라 티벳로 돌아와서 살고 있다. 한족의 이민을 실시하여 한족의 인구 비율도 계속 증가 했다.2005년에는 티벳로 연결되는 칭짱철도가 완공되었다.
이 철도에 대해서도 중국화를 가속시키기 위한 중국 정부의 계략이 숨어 있다. 자신들의 주장은 티벳의 발전이지만 진정 발전을 도모한다면 무모한 유혈전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중국이 외국을 침략한 중국인들이 5천년 역사를 자랑하지 말고 단 하루라도 아시아의 평화를 위하여 노력한 적이 있는가 되새겨 보라. 그들은 한 왕조가 멸망하고 소란기를 거치고 힘센자가 통일을 하고 나면 자만심만 가득차 꼭 주변국을 침략하기를 5천년 역사에 되풀이 해왔다.(위의 글 대부분 위키백과 사전에서 인용)티벳의 불안정은 예상 밖의 일이 결코 아니다. 이번 사태는 자치구에 행해진 중국의 무력 개입 49주년 기념행사에 뒤이은 승려들의 행진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엄청난 인명의 사망 -중국 공식의 10명부터 최대 100명 이상까지 다양한 보고가 존재한다- 을 초래한 이번 사태는 바로 중국 당국이 우려해 왔던 종류의 사건이다.
<사진2>눈물 흘리는 티벳인들. 다음 카페 "니련선학원"에서 인용(원 자료제공:불상).
최근 몇 달 동안 중국에 대한 또다른 비난이 다푸르에서의 정책에 대해 쏟아졌다. 그 문제에 대한 비판이 무엇이든 또 미래가 어떻게 진행되든 중국의 대아프리카 정책은 분명 서방 국가들보다는 덜 나쁘며 또 역사적으로 볼 때 그들이 남겨놓은 비참한 유산보다는 훨씬 더 낳다. 반면, 티벳은 중국이 세계 안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으며 그것이 다른 국가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가 라는 훨씬 더 골치아픈 이슈를 제기했다.
문제는 티벳이 독립되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만큼의 자치 허용 여부가 더 부각되지만 진실을 외면한 중국의 전략에 세계가 속고있다. 티벳은 18세기 초 청 왕조의 군사적 침략 이래로 중국의 일부로서 자리있다. 청 왕조는 중국 영토를 서쪽으로 대규모로 확대하는 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서 비록 상대적으로 소수이긴 하지만 중국인들과는 선천적인 동질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의 땅 즉 외국영토를 편입시켰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하나의 민족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역사적 경험은 느리고 점직적인 동화와 흡수의 경험이었으며 인구 이동이 종종 조정의 핵심적인 수단이 되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북서부의 티벳과 신짱으로의 한족의 대량 이주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정반대로 이것은 중국의 팽창에서 보이는 오래된 특징이었다.
하지만 티벳과 신짱은 기타 지역이지만 다른 나라로서 중국내 다른 지방과 두 가지 중요한 차이점에 의해 구별된다. 우선, 양쪽 모두 주민들이 민족적으로 한족과 매우 다르다. 다음으로, 중국에 실적적으로 편입된 시기가 상대적으로 최근이다. 라사와 기타 지역에서 일어난 시위와 충돌을 통해 명백해진 것은 전통적인 중국적인 흡수 정책이 티벳인들의 정체 의식과 독립 욕구를 제압하는데 완전히 실패했다는 사실이 들통났다는 점이다.
비록 티벳인들이 생활수준의 상당한 개선을 향유했더라도 그 때문에 종교 및 문화적 자유에 대한 갈망을 던져버린 것은 아니다. 더구나, 한족의 대규모 이주는 그들의 분노와 상실감을 증폭시키는 데 기여했을 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자 그대로 중국의 식민사업은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과 그 목적과 방법이 다르지 않다.
티벳과 신짱을 제외하고는 중국이 올림픽까지 앞으로 남은 몇 달 동안 이런 종류의 불안에 직면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티벳 사태는 현대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중국 내 민족적 차이에 대한 몰이해와 무시를 폭로하는데 기여했다. 중국은 바로 이처럼 민족적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에서 주연 배우로 등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번 사태로 인해 중국이 더욱 부정적인 모습으로 특히 개발도상국의 틀 속에서 부각될 운명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1950년 세계의 이목이 한국전쟁에 쏠려 있을때 그대들은 히말라야 산간 오지에서 평화로이 살고 있는 티벳을 무력을 앞세워 침략하여 양민 120만을 죽였다.그런 후 티벳이 본래 중국 영토라 우기고 있다. 국공합작과 관련이 있지만 대만은 자기들 영토라고 망발하고 있다.
천하에 그 말을 믿을 사람은 무식한 중국인들뿐이란 걸 명심하거라.더이상 무지와 무식을 뽐내지 말고 티벳에서 물러 가거라. 남을 침략하기를 즐기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말로를 보면 호전적 자만심은 신도 용서치 않는다.
우리나라 역시 20세기 초 일제치하 지옥같았던 36년을 견디어온, 지금의 티벳과 마찬가지로 치욕적인 식민지 역사를 가진 국가이다.그 시절의 고통과 아픔을 이미 경험해 보았기에 당연히 자주독립을 애타게 외치는 티벳의 해방 필요성은 간절하다.자국 이해만 따지는 개념없는 강대국들을 보라. 밀약을 통해 미국이 일본에 자국의 이해 때문에 일본에 넘겨진 뼈 아픈 과거를 잊어서는 안된다.
더불어 우리와 함께 일제침략을 겪은 바 있는 사회주의 중국이 지금 티벳에게 하는 짓거리는 정말 추악하기 짝이 없다. 이건 사회주의 교본에도 없는 약소국가 침범행위이다.
<사진3> 인터넷 다음카페 "아미티파"에서 인용(원 자료추정 http://biog.daum.net/binkond).
티벳독립운동이 지금보다 더 강력해진다면 중국내 다른 수 많은 소수 민족들이 움직임이 있응 거다.
만약 중국이 구소련처럼 분리독립으로 조각조각 나뉘어진다면 2백여년 전 조선의 왕 '숙종'과 청이 서로의 영토를 구분하기 위해 세운백두산 정계비- 간도땅을 돌려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길지도 모른다.
티벳은 여러가지 자원이 풍부하면서도 아직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미개척지이다. 미디어 다음 <중국은 왜 세계의 지붕 티벳에 집착하나?> 라는뉴스 기사에는 금강석, 마그네슘, 철, 석탄, 크롬, 구리, 납, 아연등의 수 많은 천연자원과 방대한 삼림. 목재와 수자원. 태양열 자원, 초대형 우라늄광산까지 부존 자원이 무궁하다고 했다.
<사진4> 연합뉴스에서 인용.
자만심만 가득찬 중국인들의 오도된 민족주의는 주변국에게 항상 피해를 주었고 우리 국민이 그 피해 직접 당사자이다. 이러한 중국의 역사적 만행을 잊지 말아야 하고 오늘날 그 예방주사가 티벳이다. 가련한 티벳 국민이여 봉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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