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의 세상읽기

한국인에 대한 일본어 욕

책향1 2008. 2. 20. 16:05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아는 한국인들은 일본어에 한국어와 같은 육감적인 욕이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영어나 중국어 등의 비속어나 욕에 비하면 대개 한국어도 비슷한 수준일게다. 실제로 슬랭어가 별로 없는 일본어가 외국어 중에 특이하게 보인다. 오죽하면 성기에도 미화어를 붙이는 일본어이므로 성과 관련 욕들이 대부분인 화려한(?) 욕설에 익숙한 한국인들 눈에는 신기하게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어가 매우 고상한 말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유교사상이 상대적으로 강했던 한국이 역으로 이념 속의 부도덕성이 욕으로 변질 된 듯 하다.  일본인의 속성처럼 욕에서도 고유의 '혼네"와 '다데마에'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일본어가 비어가 없다고 해서 그들이 욕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 일본인을 "원숭이"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에서 한국사람들은 "니다족"이다. 이것은 한국어의 흔한 종결부분인 "~니다" 라는 부분을 따서 부르는 말로 혐한 카페의 이름이기도 하다. 얼마전 한국인 여행객의 버스표에도 나온 "춍"(ちょうん)이란 말은 일본어 죠센(ちょうせん.朝鮮)의 줄인 말이다. 이 말은 최근 일본 인터넷에서는 엄청 많이 등장한다.  참고로 중국인은 "짱깨"와 "짱골라"이고 상점주인 또는 장삿꾼이란 의미의 장구이(掌櫃)가 어원으로 보인다. 대신 중국에서 한국인은 "가오리방쯔"(高麗捧子)이다. 작은 막대기란 의미의 방쯔에 고려를 붙여 직설적인 욕이 되었다. 흔히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면 그 나라의 욕부터 배운다는 말이 있다. 외국에 유학간 한국 남학생들이 현지 여학생에게 처음으로 알려주는 말이 "오빠"란다. 어떤 외국인은 텔레비전에 나와서 "어쭈구리"를 연발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우리가 자라면서 식습관을 바꾸기 힘들 듯 욕의 강도도 습관성과 중독성을 보인다. 애시 당초 심하지 않은 욕이 길들여 졌다면 한국어의 욕처럼 적나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중독되면 김치의 매운맛처럼 점점 더 매운맛을 찾거나 강도가 심한 욕설이 개발된다고 볼 수 있다. 길들여진 언어습관에서 중도에 순화된  욕설을 바란다면 담배 끊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가능하면 순치된 언어 습관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말투를 길들이도록 노력해야 하며 특히 언어생활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방송언어에 대해서는 방송인들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 욕설과는 관계없지만 이 기회에 아침 드라마를 우연히 보게되면 고함치고 아우성지르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이런 장면을 자주 보게 되면 어느듯 아이들도 학교에서 큰 목소리를 내게 되고 결국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게 되는 결과를 산출한다. 

한국인 귀에 익은  일본어 욕은 "바카야로"이다. 이 말을 직역하면 경우에 따라서 "* 새끼"정도가 아닐까? 말과 사슴도 구분 못하는 녀석이란 의미의  이말은 일제 시대 이후 단연 우리나라에 알려진 대표적인 일어이다. 단지 짐승이란 의미의 칙쇼(畜生)도 자주 그들이 애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심심하면 한국인들을 "바카야로 조센징"이라 불렀다. 이 말을 함으로서 그들은 피식민지인의 아픔을 감안하기는 커녕 호사를 누리며 지배자의 우월적인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이런 말을 자주하게 된 그들은 한국과는 닮았지만 다른 문화적인 차이를 감안하지 못한 그들만의 속좁은 멸시 풍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기타나이 조센징"이 있다. 이말은 "더러운 조선인"이란 의미이지만 역시 문화적인 차이를 감안하지 못한 그들만의 욕설이다. 김용운씨는 그의 저서 일본인과 한국인에서 가을철 산행을 했다면 목욕을 하지 않고 이불 속에 들어가도 이불 속에서 땀이 말라버리는 한국 기후와는 달리 습도가 높은 해양성 기후인 일본에서는 그냥 잠들기가 힘들다고 했다. 이런 자연 환경의 차이나 문화적인 차이를 감안하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행해진 것이 한국인에 대한 욕이다.  욕조에서 스스럼없이 벗은 채 시아버지의 등을 미는 며느리들의 풍경은 조선시대 철저하게 유학사상으로 무장된 선비들의 눈을 아연케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일제 때 동경에 있었던  필자의 아버지는 베개를 가르쳐 줬더니 일본 여자들이 허리에 차고 다닌다며 늘상 문화적인 우월성을 강조했다.

해방이후 할아버지의 산소를 돌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당시의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시모노세키 항을 통해 입국한 아버지는 당시 시모노세키 부두에는 한국인이 싼 대변으로 인해 발을 들여 놓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인 점을 감안하지 않은 일본인들에게는 역시 한국인은 "기타나이"로 증명되고 남았을 것이다. "닌니쿠 쿠사이"가 있다. 이건 마늘 냄새이다. 김소운의 목근통신에서는 일제시 한국 유학생들에게 이 냄새 때문에 방 빌리기가 무척 어려웠고 일본인들은 대변에서도 마늘 냄새를 맡았다고 했다. 당시 유학생들은 대부분 한국의 부유층 자제로 가족들이 한국에서 정성스레 보낸 맛난 반찬을 일본인 앞에서 꺼내 먹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것 또한 냄새가 문제였지만 결국 문화의 차이였다. 이랬던 그들이 이제 마늘을 장수 식품으로, 비빔밥을 웰빙식품으로 여기는 자체가 "기타나이"가 없어지는 계기 중 한 가지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인에 대한 욕설 중 "요보"라는 말은 일본어에서도 사어화 되었지만 위의 "바카야로"의 경우보다 과거 한국인을 멸시한 가장 심하고 대표적인 욕이었다. 이 "요보"는 한국어의 부부간 호칭인 "여보"에서 갖고 간 말로 전체적으로 한국인에게 모멸찬 비칭으로 압권이었지만 최근 사전에 나오지 않고 없어진 점이 다행이다. 

 *추기;  경남 신문 2019.8.14일자 1면에는 남해 김연호씨의 1946.8월 기억이 소상하게 나와 있디.경남신문의 전신인 남신신문에 제보되었던 내용으로 어느 일본인이 해방후 본국으로 돌아기 전 여인숙 벽에 써놓은 글귀이다. <전략> 너희들이 땅에 엎드려 애걸하게될 것이니라고 햐였고 마직막 문장이 "가난한 자여 너의 이름은 "여보"이니라"고 하였는데 사진속 원문은 "요보"로 적혀 있다. 

*2008.2.20.16시작성 

*일부 2016.11.2 수정.2019.8.14 일부 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