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언론의 숭례문방화사건보도 비판
과거부터 일본 언론들의 반한 보도는 잘 알려져 있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비하 보도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비판은 그래도 국내 민주 인사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기도 하고 정보를 얻는데 도움도 됐다. 국내 언론 사정이 자유롭지 못할 때이므로 일정부분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언제나 일본 언론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 격하는 전 언론사의 암묵적인 협약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국제사회에서 경쟁자인 한국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어 종국적으로 자국의 이익 챙기기라 보아도 무방하다.
또 일본 국내용으로는 재일 동포에게 수치감이 들게 해 귀화를 종용하는 일종의 수단이고 자신들의 우월감을 증명하는 효율적인 방법이 되어왔다. 성수대교 붕괴와 대구 지하철 폭발사건은 그들이 한국을 엉터리 국가로 만드는데 좋은 기회였다. 보통의 일본인은 한국이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학생데모와 독재국가였지만 프로야구의 시작으로 보통국가 이미지에 도움을 준 적이 있다.
사실 일반적인 일본인들은 “한류” 로 인해 약화는 되었지만 엉터리 국가라는 이미지가 속내에 강하다. 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언론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과거 우리나라에 고속도로가 개통되었지만 화장실이 부족하여 버스 승객들이 길가에서 줄을 지어 소변보는 사진이 전국지에 실린 적이 있다. 독도 문제 역시 일본은 국내에서 항상 “한국의 군사적인 불법 점거”가 테마이다.
이 역시 한국의 엉터리국가 이미지에 훌륭한 역할을 한다. 잘 알려 진 바와 같이 일본은 국내에 이슈가 없다든지, 국가적인 해결과제가 없고 평화로울 때는 항상 이웃에게 희생양을 강요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임진왜란이나 그후의 한국병탄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의 중국농약만두 사건이 지나치게 매스컴을 타는 것도 일본 국민들의 약자 죽이기의 한 단면으로 한국이 대상이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이 경우 중국이 비극적인 희생양이다. 여기서 "살인 만두"의 해악성을 희석시키는 것이 아니라 민주국가 일본의 언론들이 하는 일 치고는 너무 치사하다는 평이 많다. 올림픽을 눈앞에 둔 중국이 불행하게도 대상이 되었다.
이런 비슷한 사례로 과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보도에서 할머니들이나 한국정부가 돈 때문에 그런다는 식의 보도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는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고 약자에게 모든 책임과 잘못을 미루고 피해자인 한국정부가 얼마나 치사한가를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국제 사회에서 일류 국가로 자부 하는 그들은 60만이 사는 재일 한국인이 있지만 한국인을 위한 양로원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YS의 방일 시 지적에 따라 이후 부랴부랴 만든 사실이 있다. 해방이후부터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 여성 200여명의 거주시설인 경주의 나자레 요양원이 있었지만 그전까지 한국인을 위한 요양시설 하나 없던 일본의 국제 도덕성은 질타를 받아 마땅하다. 이 요양원은 경주를 방문하는 일본인들의 필수 코스이고 8년 전 소설 “나자레원”의 배경이지만 그들의 눈에는 동족이 자신들이 무시하는 “야만국” 한국에 사는 것이 더 처량한 느낌일 것이다. 울고가는 일본인들이 재일 동포들의 차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기나 할까 의문시 된다. 사실 일본 내에서도 개인 간 약자에 대한 “이지메”는 한국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정도이다. 사회적으로도 조선인과 부락쿠민, 아이누 족에 대한 차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많은 천재지변이 일본인들에게 준 좋은 영향은 준비성과 청결성이라 할 수 있다. 나쁜 영향으로 항상 불안감과 조바심으로 인한 조급성과 자신들의 도덕성 앙양에 걸 맞는 적당한 희생양 찾기이다. 여기에 걸 맞는 예가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사건이다. 일반인들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유언비어를 믿었고 덩달아 일본 내무성의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지시문에 의해 죄없는 우리 동포들이 죽창 등에 의해 무참히 학살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일본의 민, 관 합작품이다. 자료에 의해 일본 정부의 치밀한 협조하에 일어난 민비살해 사건에서 아직도 낭인들의 짓으로 우기는 현상과 마찬 가지다. 정신대 할머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말한 일본인들의 청결 지향으로 인한 희생양으로 한국인은 “기타나이 조센진”(더러운 조선인)으로 매도됐다. 여기서 당연히 환경의 차이나 습관성은 아예 무시되었다. 자신들의 불안감으로 인해 사회적인 약자는 인간이 아니다. 이용운 교수의 저서 「일본인과 한국인」(1981.뿌리깊은 나무) 에서 일본인들의 저소득층이 사는 곳에 가보면 절망적이고 비참하기 짝이 없지만 온갖 멸시를 받고 사는 재일한국인 빈민촌에서는 (그래도) 희망과 인간 냄새가 난다“고 했다.
일본인 50대 한국유학생의 기고에서는 서울의 골목길에서 쥐새끼 한 마리를 잡은 초등학생들이 “불쌍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잡은 더러운 쥐새끼를 그냥 밟아 죽였을 것이라 했다. 여기서 잔인한 사무라이 정신이 기저에 있다.
그는 꼼꼼하지는 않지만 항상 인간적인 한국사회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그들의 타인에 대한 배려심에 놀라곤 한다. 이 모두가 항상 불안한 자신들의 심리상태를 가리는 외형적인 “다데마에”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면 실망스러울 수 있다.
일본의 기독교 학자인 우치무라 간죠(內村鑑三) 같은 이들은 한일합방에 반대했지만 대세에 눌렸다. 과거 일본의 최고의 명문인 동경제일고보 출신인 사회주의자 마키무라 칸은 자신의 장편 시에서 관동 대지진과 만주에서 학살된 조선인의 한없는 슬픔을 노래하며 일본군대를 “병비”로 나무랐지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1924년 서울에 조선민속미술관을 설립하고 이조미술전람회·이조도자기전람회를 개최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한국의 전통미술과 공예품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이에 대한 평론 및 수집을 했다. 한국의 미를 '애상(哀傷)에 찬 자연미', '영탄(詠嘆)의 미'로 설명하면서 그 원천은 한국민족의 역사적 환경과 후천적인 정치풍토에서 연유한다고 했다. 또 경주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오사카 긴다로(大坂 金太郞)는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 」에서 부여나 경주의 유적지나 미술품을 예찬 한 것은 한국의 미적 감각을 표현한 것은 맞지만 그들이 피지배인의 아픔까지 헤아렸는지는 의문스럽다. 즉 지배인의 우월적인 문화감각이 '감상'으로 표출된 점도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1983. 모음사), 「구로다 기자가 한국을 먹는다 」( 2001. 월간조선사), 「좋은 한국인 나쁜 한국인」(1994. 고려원) ,「판문점의 벽은 무너질까 」(1990. 청계연구소출판국) 등 한국에서 5,6권의 한국관련 책을 발표했고, 일본에서도 20여권을 출간한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의 한국 관련 책들을 읽어보면 거의 대부분 교묘한 우월감과 한국사회의 치부를 들어내 일본 내 혐한론자 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의 책 중 초기에 출간 된 것부터 점점 자신감을 더해 노골적으로 한국 사회를 조롱하는 듯 하다. 일부 내용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점을 알려주기도 하나 그 근저에는 일본인들의 교묘한 우월감의 표출이다.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해서 유명인이 되었던 전남대 일문과 전 초빙교수였던 미즈노 �페이(水野純平)가 일본으로 돌아가서 철저한 왜곡논리의 반한 분자가 된 사실을 보면 그들의 속내와 표변성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한편 ‘도와주십쇼’는 미즈노 �페이 교수를 일본에서 만나 인터뷰를 시도했다. 현재 혹카이도 산업 대학에서 한국문화 등을 가르키는 미즈노 교수는 한국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으면서 “이제 나는 더 이상 한국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며 “인터뷰하려면 시간당 2만엔을 내라. 공짜는 안된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철저한 다테마에에 전국민이 속아 넘어 갔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에 대한 "충고"이기 이전에 다데마에 속에 감춘 '혼네"는 한국은 "엉터리 국가"이고 결국 한국 멸시이다.
또 다른 주한 일본경제인이고 1999년 백범기념관에 성금을 내기도 한 이케하라 마모루(池原 衛)는 자신의 저서인 베스트 셀러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에서 한국의 경쟁력있는 상품은 '리니지 게임'과 '김치'밖에 없다며 한국문화 씹기에 바빴다.
즉 개인 일본인들 자신의 탐욕성과 집착성으로 인한 인명 살상과 한국병탄을 안타까워했지만 이것을 용납 못하는 집단성은 일본 사회의 병폐로 보인다. 그들의 불안한 마음으로 인해 건전한 방향으로는 나타난 것이 철저한 준비성이다.
이제 하나의 역사가 되었지만 아프지만 좋은 교훈으로 삼아 우리의 후대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현재의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일이다는 논조로 언론들이 거창하게 떠들었지만 냄비근성의 국민들 마음에서 어느덧 용두사미가 되어버렸다. 성수대교 붕괴 직후 동경의 한국특파원 사무실은 "엉터리 한국인들 물러가라“는 식의 수많은 일본인들의 전화에 시달려야만 했다. 여기서도 일본인들의 엉터리 국가 이미지가 표출되었지만 당시 한국특파원들은 일본의 터널 붕괴 등을 예로 들며 비난을 모면했다고 한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14일 ‘한국의 슬픔을 생각하며’라는 제목의 사설까지 실었다. 국보 1호를 잃은 한국인의 충격에 공감하면서 이웃 일본이 숭례문의 복구와 방재 대책에 공헌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문은 “일본이 목조건물 복구 기술을 갖고 있어 지혜를 빌려 줄 여지가 있을 것”이라며 “ 역사 유산의 복구와 보호에 협력하자”고 제안했지만 그전에 숭례문이라 먼저 불러야 한다. 현판에 분명 숭례문이라 되어 있는 현판도 자세히 보도하면서 끝까지 "남대문"으로 부르는 것은 결국 또 하나의 교묘한 역사 왜곡이다. 이는 징용가는 형제들의 아픔을 묘사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일본에서 '연인들 이별의 아픔'쯤으로 변한 것과 같은 현상이다.
35년 동안 일본 전국의 중요 문화재를 돌보면서 방재 체제의 설계와 시공 분야에서 1인자가 된 하타케야마 슈지(畠山修治. 아즈사설계회사) 사장은 “한국 문화재의 지존을 잃었다”며 애도했다. 걱정 어린 관심에 역사 왜곡에도 시간이 없는 일본이 언제부터 한국에 이렇게 큰 애정을 가졌나 싶어 놀랄 정도다. 이런 논조의 일본 신문은 대개 일본인 우월성의 교묘한 표출이거나 장사속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반기문 UN 사무총장 선출에 끝까지 반대하고 결국 기권한 나라가 이웃 일본이다. 이런 일본의 속셈도 모르고 황홀해 하는 국내 주요일간지 일부기자들은 최근 일부 정치인들의 친일성향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이들에게 해군사관학교에 보관중인 임란시의 "동래부사송상헌 순절도"를 구경하라고 권하고 싶다.
고유의 다데마에로 일본이 보이는 관심의 이면에는 숭례문을 ‘반면교사’로 삼자는 마음가짐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잘 못이 아니나 다른 일본의 방송처럼 “남대문이 일본에 있었다면 불타지 않았다”는 논지를 보면 사실 여부를 떠나 역시 그들의 교묘한 우월감의 표출이고 반면 한국인의 열등성을 전개하는 등 역시 “코리아 디스카운트“ 발상이 엿보인다.
하지만 한국은 ‘실패에서의 교훈’을 얻으려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그들의 지적은 맞는 말이다. 흉물로 변했다는 이유로 서둘러 장막을 치더니 잔해 처리를 둘러싼 책임 공방으로 소란스럽다. 문화재 보호와 방재 시스템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디스코텍이란 말이 아직 생소하던 1983년 4월 18일에는 대구시 중구 향촌동 디스코텍 초원의 집에서 불이나 청소년 24명이 숨진 사건 당시 그들이 보인 재빠른 움직임은 우리에게 과거에 대한 반면교사와 함께 눈여겨봐야 한다. 좁은 출입구로 인해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고 일본인들은 인명사고의 원인과 대책을 세워 전국의 업소 출입문에 대한 점검을 하는 등 기민함을 보였다. 아사히 신문 2월 13일자에서는 한국에서 처음 열린 ‘국민참여 재판’ 에 일본보다 한 발 앞서 법률 초보자인 시민이 재판에 참가하는 제도가 12일 한국에서 시작돼 ‘국민참여재판’이라 불리고 있다며 대구시 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심리는 일본 법무성에서 나온 한국 주재 일본대사관원도 방청했다. 한국의 부가가치세 실시당시에도 그들이 배웠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5년 낙산사 화재 이후 문화재보호에 대해 많이 거론은 되었지만 대부분이 탁상공론으로 흘렀다. 1992년 7월 30일 오후 5시 남해도와 창선도를 잇는 창선대교가 붕괴되었고, 1994년 10월 21일에는 성수대교가 붕괴되어 32명 사망했다. 반면 일본은 1949년 나라(奈良)현의 호류지(法隆寺) 금당 벽화가 불에 타고, 이듬해 교토(京都)에서 긴카쿠지(金閣寺) 금각을 방화로 잃은 뒤 문화재 보호에 열성적이다. 소중한 문화재를 다시 잃을 수 없다는 자세는 본받아야 마땅하다. 제2, 제3의 숭례문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의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을 고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지만 다시는 코리아가 디스카운트 되는 계기를 우리 스스로 제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항상 귀가 따갑도록 듣는 '타산지석"과 "반면교사"의 철저한 실행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중국지도자의 지적처럼 오국주의(誤國主義)가 일본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일본의 장래는 없고 그 오국주의의 중심에는 못된 일본언론이 있다. 국익을 우선한 일본 언론들이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언론감시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6월 24일 1백68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6 세계언론자유지수’ 보고서에서 일본의 경우 점증하는 민족주의 탓에 언론 자유도가 14단계나 하락한 51위로 추락했다. 반면 한국은 작년에 비해 3단계 오른 31위를 기록, 아시아권에서 뉴질랜드(18위)에 이어 가장 언론자유를 누리는 국가로 분류됐다.
일본 언론들은 과거 미국 언론들이 국익보다 진실 보도를 앞세워 니카라과 우익 콘트라 반군과 칠레 우익 쿠데타를 지원한 네오콘에 대한 보도를 그들이 먼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불필요한 우월감으로 항상 일본 독자취향에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려는 일본언론의 자세가 바뀌지 않는 한 섬나라의 한계도 바뀌지 않을 것이며 선린우호는 뜬구름에 지나지 않는다.
2008.2.16오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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