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의 세상읽기

아! 숭례문

책향1 2008. 2. 11. 10:33
 

아! 숭례문

 

위 사진. 1930년대 숭례문 모습. 미국인이 올린 사진.

 

국보 1호 예를 숭상하던 향기롭던 문이 화마에는 너무 약했다. 문약한 채로 화기를 누르고 있었지만 이제 구한말 개나리 봇짐을 등에 멘 어른들, 댕기머리 아이들과 달구지 나오는 빛바랜 사진으로 만족해야 한다. 단아하던 자태가 숯검정으로 변하여 무너진 이 나라의 서럽도록 고왔던‘대문’은 그렇게 못난 후손들을 책망하고 있다. 왜병들이 난삽한 복장으로 흉기를 들고 소리를 지르며 타고 올랐을 이 나라의 자존심은 우리 내부 잘못으로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왜 우리는 이 정도 밖에 안될까 하는 자괴심을 느끼기 전에 권력에 올인하는 이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시커먼 연기 속으로 사라진 위엄은 고사하고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조용히 벗어나 아무 말이 없던 침묵의 역사를 누구에게 물어볼까? 올해의 시작을 맞는 음력설을 어저께 보낸 지 며칠 찬바람은 자동차 불빛과 함께 흔들리는 소나무 가지 사이로  무척 요란스럽게 흩날렸다. 겨울바람이 그저 지나치질 못하고 스치면서 유난을 떨고 지나갈 무렵 주린 배를 움켜잡고 조용히 찾아들던 그 처마가 이제 추억속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조선의 오래 묵은 어둠을 스물스물 밀쳐내고 있던 숭례문. 찬란한 무지개빛을 뿜어내고 있는 숭례문 앞 더 넓은 잔디밭 곳곳에는 연인들이 마주 보고 앉아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저만치 입을 맞추고 있는 연인들도 있다. 지난 연말 잔디 광장도 추억으로 마음의 한 장을 장식한다. 괜히 왔다가는 인생이라지만 한 많은 역사를 정좌하고 지켜본 모습 영겁 속에 각인되어 이제 우리의 슬픔으로 다가 섰다. 새해 덕담이 간혹 큰 가슴을 가지게  해주는 모습도 있으며 우리를 책망한 시간 우매한 생각으로 자학하던 역사로 표류하던 깨침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얘기인 것을 알 수 있게 한 순간이었다

느리면서 비장한 600년 역사의 풍파를 뒤로 한 채 5시간 찰나에 사라진 숭례문의 역정을 외롭다 하여 사랑을 구걸할까마는 늘 그리움으로 흥얼거리고 간혹 되뇌이며 뒤돌아보는 여유는 먼 남의 나라 이야기는 아니다. 시골 풍경에만 익숙했던  상경자들의 모습에서 그는 교과서 흑백사진에서 나와 다시 마음을 정리하고 새롭게 하는 시간을 가지게하는 힘이기도 하였다. 일본제품 광고가 지붕위로 솟을 때 자존심으로 막아낸 일은 어느 때보다 무척 심오한 느낌으로 다가선다. 이제 관악산의 화기를 맞불로써 꺾기 위함에도 결국 자기희생이 되어 버렸다.겉치레 예를 중시한 국가 이념으로 오행의 남쪽 (禮)를 숭상하여 무(武)가 부족했던 의미를 웅변했다. 1934년 왜구의 후손들이 다시 돌아온 환희에 찬 가운데 '남대문'으로 문화재로 변신했으나,깨끗하고 아름다우면서 잔잔하게 온 사방을 한곳에서 열었다

 가는 모습에 우리들이 올 한 해의 시작이 어떤 시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린 순간이었다. 내게서 멀어져가도 사랑이 눈물져 나를 멀리하여도 그 자리에서 내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한 한 줄기 연기였다. 그림 같지만 사방이 곧 간다는 의미를 지니면서 저렇게 슬프지 않게 아름다운 모습을 자연스럽게 내 보이고 있었다. 왠지 모를 자그마한 가슴의 열을 삭히고 분함을 버리고 남도 나도 하나가 되게하는 위력도 물거품이려니. 도공 심수관은 학생들에게 강연하면서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한(恨)을 눈물로 노정했다. 빠른 세월을 무던히도 건들거리는 나무 가지의 일렁이는  바람처럼 지나가지만 무엇을 바램인지가 모를 정도로 원하기만 하였던 그 시간들 숭례문은 자신을 태우는 희생으로 화마에 휩싸인 모습을 보는 슬픔보다도 아름답게 회한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서글픔을 느끼기도 전에 무너지는 대들보가 가슴에 와 박혀도 인재는 조물주도 막지 못하는가 보다. 600년 인고의 세월을 다시 손톱만큼이라도 한 많은 중생에게 보여 주고 회한이라도 없애주지 뭐가 그리 급해 바삐 가렸는가. 그냥 울고 싶은 오늘 온 시선이 권력에 몰입하고 있지만 항상 태양은 은은하게 온 사물을 비추고 새해의 시작에서도 마지막을 비추고 있었다. 차라리 부끄러운 이 육신을 불태울 것을....그 침묵의 예를 잊지 않으리라.

 

 

2008.1.11 오전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