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왕실의 술, 한산 소곡주
소곡주는 우리 역사에 나오는 가장 오래된 술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근거로 하자면 1500년 전부터 이 땅에서 빚어온 술이다. 백제의 역사 서술 중에 자주 등장하고 왕조가 망하는 그 순간에도 의자왕과 함께 소곡주가 등장한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한양에 과거 보러 가던 선비가 한산을 지나다가 목을 축였다고 하는데, 취흥이 돋아 결국 과거를 보지 못했다는 말도 전해온다. 그 맛이 예나 지금이나 기가 막혔는지 집을 털러 간 도둑도 소곡주 한잔을 마시고는 그 맛에 반해 술독을 비우고 술맛에 취해 주저앉았다고 한다.
이게 바로 앉은뱅이 술이다. ‘안 일어나다 못 일어나니…’라고 했으니 취객의 모습이 어땠을지 대충 짐작이 간다. 소곡주는 18도로 독주는 아니다. 그렇지만 한번 앉아 맛을 보면 입안에 퍼지는 감칠맛 때문에 또 한잔을 부르고 미나리무침을 안주 삼아 또 다른 잔을 부르고…. 처음에는 호기심에 시작했다가 결국 주저 앉아 술독을 비우고야 만다.
맛의 비결은 정성이다. 염분이 전혀 없는 천연수와 좋은 재료를 썼는데 이것이 백제시대부터 내려오는 비법이다. 통밀, 맵쌀, 찹쌀, 들국화, 메주콩, 엿기름, 생강 등 결코 단순하지 않은 재료들을 가지고 누룩만들기, 밑술만들기, 민술만들기, 덧술만들기, 숙성하기 등의 과정을 거친다. 화학첨가물을 넣지 않고 고급스러운 감칠맛이 나는 이유다. 술은 100일 동안 자연발효기간을 거친 후에야 소곡주로 태어난다. 이것을 다시 소주고리에 증류하면 43도 증류주가 된다. 오래 보관할수록 깊은 맛을 낸다.
술은 감미, 산미, 신미, 고미, 지미, 청량미 등의 균형이 잘 어울려야 한다는데 이 소곡주가 그 맛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러니 대한민국 전통주 페스티벌 등 각종 대회의 수상 이력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고혈압 방지’ 같은 술의 효험은 이 앉은뱅이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들의 핑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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