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들 청소하던 날

책향1 2015. 9. 24. 17:23

 

 

서녘 하늘에 감 홍시가 걸리던 그날

건너 마실 아저씨는 짐차 자전거 짐칸에

나무 궤짝 같은 큰 풍구와

옆구리엔 잎사귀가 몇 달린 기다란 대나무 두어 개를

대장 내시경 장비처럼 갖고 왔다

애들은 물렀거라

어머니는 개다리소반에 우물물 얹고

연신 부뚜막을 향해 빈다

한 바지게 가량의 청솔깨비가

풍로로 피워 올린 연기는

쥐구멍으로 굴뚝으로 온 집안 가득

자욱하다

구들장 거스름은 모두 하늘로 어디로 날아올랐다

방안의 술동이, 툇마루 끝물 고추

헛간의 괭이 호미, 곰배, 조선낫, 비스듬이 누운 쟁기

우물가 숫돌, 감나무, 까꾸리, 옆집 개도 거져 콜록 콜록

모두가 목이 컬컬하고 발갛게 달아오른 그날

구들 밑은 숨길을 터고, 불의 주둥이로

새롭게 불어넣은 군불을 맞이하고

모든 것을 삼키고 트림 한번 한 후

속이 시원해진 고래를 지나

굴뚝으로 많은 용종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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