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남해는 역사박물관이 아쉽다

책향1 2015. 8. 13. 10:45

남해는 역사박물관이 아쉽다
향우기고 - 홍춘표 삼동 출신 시인
[462호] 2015년 08월 12일 (수) 20:09:05 남해타임즈 nhsd@hanmail.net

   
홍 춘 표
삼동 출신 시인
 남해는 자암 김구 선생이 예찬한 산자수명의 아름다운 신선의 섬이다.

 동쪽으로 대마도, 서쪽은 흑산도, 남쪽은 제주도의 해협을 이은 바다지만 일반적으로는 부산에서 진도까지의 해역을 남해안이라 한다. 해안선은 침강 요곡의 굴곡이 많은 암석 해안으로 다도해를 이룬 경관이 아름답기도 하다.

 남해는 북쪽으로 하동과 사천에 접하고 서쪽은 여수와 광양만을 끼고있으며 동쪽으로는 통영과 인접하고 남쪽으로는 망망대해를 이룬 곳이다.

 남해는 항쟁의 바다로 유서 깊고 감회 깊은 사건의 발생지다. 백제와 일본은 남해안을 통해 교류했고, 몽고군이 한반도를 침탈 유린했을 때 삼별초 주둔지로 끝까지 나라를 수호했으며 고려인이 불심으로 나라를 지키려했던 팔만대장경 판각지로 약 40년(1232-1273년)간 항몽사상과 자주정신이 살아있는 문화유산의 명소이다.

 남해 관음포 앞바다는 고려 우왕 9년(1383년) 최무선이 화약을 발명해 4대첩의 하나인 해도원수 정지장군(鄭地將軍)이 남해의 안전을 위해 국난을 극복하고 왜구를 대파해 하늘도 땅도 놀라고 남해를 침공에서 구해낸 위용과 충의의 승첩(勝捷)지로 노량해전보다 215년 앞선 성역을 간직한 곳이다. 이에 남해를 구제한 은공으로 후손에 길이 빛내기 위해 남해(향토) 사람이 직접 돌을 다듬어 현재 탑동에 정지 탑이 세워져 있으나 애매(曖昧)한 석탑으로 승첩기념탑이 있으면 좋겠다. 

 남해는 고려·이조 중엽에 이르는 삼백년 동안 왜구들의 끈질긴 침공과 약탈(掠奪)로 재산과 인명에 막대한 피해를 입은 고난과 수난(受難)을 겪은 향리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당시 불멸의 민족적 성웅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1592년(선조 25년) 명량·노량 해협과 한산도에서 왜군을 대파했고, 1598년(선조 31년)에는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순국한 성지이다.

 또한 고려 성리학자 백이정이 살았던 곳이고 자암 김구, 서포 김만중, 소재 이이명 선생 등 유배객들의 문학정신이 살아있는 유배 문학 산실이기도 하다. 훌륭한 문인과 무인 등 수많은 정객들이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꿈꾸며 세상을 바로 잡아보려는 충심이 당쟁에 휘말려 탄핵되어 귀양살이를 한 적거지이기도 하다. 이들은 지방민과 백성을 보우하며 유풍진작(儒風振作)으로 후학을 양성하며 애국 충절의 정신으로 국가 수호에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현재 남해에는 문화의 전당인 유배문학관이 있으나 이는 남해를 대표할 역사박물관이 될 수 없으며 남해 역사에 예속된 것이다. 

 남해는 바다 경관이 수려하여 해양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상주·송정·월포·사천·모상해수욕장은 여름철 전국에서 피서객을 맞이하는 대표적인 피서지이다. 이들 명소는 남해를 찾는 키워드로 남해의 근원을 홍보 할 수 있는 명승지이다.

 문화와 역사의 고장인 남해를 소개할 박물관이나 기념물이 없다는 것은 남해의 정체성이 없는바와 같다. 문화와 역사는 근본적으로 사실에 주안점을 두고 남해를 알리는 매체(媒體)로 역사관은 남해의 뿌리요, 온 군민들의 얼이 숨 쉬는 남해의 박물관이다. 하루속히 남해 박물관과 기념관을 건설해 수많은 역사 문화를 공유하고 전승하며 키워가야 할 것이다.

 문화는 전래로 이어오는 것도 있으나 이 시대 군민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예전에 우연히 만난 한반도통일지도자총연합 배문태 회장은 남면 마을에 초대 국회의원이었던 박윤환 의원의 기념비와 남해 역사관 설립을 구상하며 대응책을 세우고 있어 깊은 애향심을 엿보게 했다.

 우리는 남해 역사박물관을 설립해 초대 의정 활동을 한 근현대 의원은 물론 남해를 빛낸 장군과 인물에 대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삼별초 주둔지로 사실을 복원해 문화재 지정을 추진, 고려인의 항몽사상과 자주정신이 살아있는 산교육의 장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 남해의 중요 문화유산인 문화재를 다시 상기시켜 새롭게 나가야 할 것이다.

 남해는 군민이 거주하는 삶의 고장이다. 나라님과 훌륭한 군수님이 없다면 어떻게 군이 발전 하겠는가? 군수를 세운 것은 군민을 위한 것이다. 군민이 지지하는 행정은 융성하고 군민이 분열하면 발전이 없다. 민본사상의 나라는 온갖 수단을 다해 백성을 잘 살게 해야 한다는 부국의 역설이지만 군수를 사랑하고 예로 높이고 하는 것은 아래는 사랑하고 아끼며 서로 존중해야 하고 청렴하게 신의가 있어야 한다.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며 도와야 하는 것이 자신과 남해를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