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은
국민학교 과제물인 도화지였고
풀 뜯던 소 그림자였고
방황하던 젊은 나를 더듬은 회음부 드러낸 늙은 창녀였으며
검은 구름이 북쪽으로 밀려가던 날
부스럼 난 머리를 잘라주던 시골 이발사였다
금강초롱 갈퀴현호색 눈개승마 금마타리 거미고사리 등심붓꽃 당개지치 동강할미꽃 달개비 땅나리 은방울꽃 애기괭이밥 며느리밥풀 그늘용담 참나리 쑥부쟁이 구절초 애기똥풀 쇠비름 고들빼기가 푸른 피를 흡수하여 배부를 때
깔고 누운 한 뼘 침대 너머로 모락모락 피어나는 밀사리 연기 속에
소꼴 베 오는 아버지의 느릿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