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사지 참나리꽃
계절이 여지없이 지나가는 절터는 적막하다
꽃대 밑 이파리들이 제 몸을 지키지 않으니
분홍 꽃가루로 범접을 거절한다
어디선가 숨어 있는 때자국같은 연륜이
땅심을 받아 양성굴광성으로 꼿꼿한 척
비바람 부는 좁은 대웅전 터는 불쌍하다
세파가 어떤 호들갑 부리며 절터에 들러
연등을 밝히겠는가
그래서 모든 허물을 용서받는 무명 절터가 좋다
노승도 젊은 시절 중생들을 용서해주곤 했단다
그래서 용서 받는 절터가 좋다
상채기들을 안은 무리들이 이곳으로 와야 한다
일상의 피곤함을 속옷 벗 듯 하고
뿌리 굵은 잡초들 아우성만 옮기고 풍경소리처럼 다가와도 좋을
소리 없는 절터에서 이름 없는 중생들이 그랬듯이
줄기에서 새카만 씨 한 움큼 따서
천천히 말없는 절터를 걸어 나온다.
2013.7.18 남해 노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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