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책향의 술나라기행13

책향1 2013. 6. 3. 20:43

배꽃같이 향기로운 문배주

*필자주: 이글은 20여년 전 일간지에 연재된 글로 그 때와 지금의 분위기와 정서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과음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중요 무형문화재 제86호로 지정된 문배주의 원래 고향은 평양이다. 대동강 물을 사용하여 담갔다는 문배주는 얼핏 배로 담근 술이 아니냐고 생각하기 쉬우나 배는 사용치 아니하고 다만 이 술이 익으면 배꽃이 활짝 피었을 때와 같은 향이 난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배주는 좁쌀과 수수 그리고 누룩을 사용해서 담그는 술이다.

 언제 어디에서부터 빚어졌다는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고려 건국 초기에 태조 왕건에게 문배주가 진상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미 신라때부터 빚어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문배주의 맥이 지금은 이경찬씨의 아들 이기춘씨의 6대째 이르는 가업으로 전승되고 있다.

 

 담그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재료는 메조와 찰수수, 물 누룩을 준비하는데, 먼저 누룩을 깨끗이 씻어 맑은 물이 나오도록 헹궈내 고들하게 밥을 만든다. 그리고 물과 누룩을 섞어 술을 담가 5일 정도 발효시킨 다음 찰수수로 밥을 지어 다시 2일간 발효시킨다.

 

이렇게 만든 덧술을 깨끗이 독에 담아 지하실에 10일 동안 놓아 발효를 시킨다. 그런 후 증류를 시키는데 이때 땔감은 꼭 소나무 장작을 사용해야 한다. 은근한 불로 소주고리 속에서 술을 완전히 익혀 이슬로 맺혀진 것을 받아 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증류시켜 받아낸 술을 다시 독에 담아 6~12개월 이상 숙성시켜 낸 것이 이른바 문배주다.

 

 알콜 성분이 45도 인데도, 도수가 높아도 배갈같이 독하지 않고 순해 마시는데 부담감이 없다. 향기와 감미가 뛰어나 술맛이 한층 품위가 있으며 마시고 난 후에도 뒤끝이 좋고 숙취가 없다. 적어도 1년 이상은 익혀야 제맛을 즐길 수 있다.

 

담아두는 항아리도 광염단을 써 번들거리는 것은 피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수질도 매우 중요하다. 충북 단양의 석회암 층에서 솟는 생수가 이상적이라지만 실제로 대동강 물맛이 으뜸이라고 한다. 이제 통일원의 북한주민 접촉 승인으로 대동강 물을 18ℓ 당 4천 8백 원씩 수입키로 결정하고 남포항에서 선적하여 부산항이나 인천항으로 반입할 예정이다. 따라서 기능보유자인 이경찬씨는 수입된 물 값 대신에 문배주로 갚는 방법도 고려중이다.

 

 더불어 문배주 술병으로 쓸 재료로 평양 근교의 고령토도 반입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지난해 제주도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구소련의 고르바쵸프 대통령이 역사적으로 만난 만찬자리에서 건배를 할 때 이 문배주가 사용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6・25 난리를 겪으면서 문배주 제조법을 알고있는 기능보유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이제는 그 명맥을 이경찬씨 가족만이 유지한 채 고향 평야에서 남하해 서울에 살면서 이어오고 있다. 고집스런 장인 정신에서 소나무 숯과 이슬로 맺어지는 맑고 향긋한 문배주의 향취에서 끈끈한 그 무엇을 느낄 수 있었다.

 

 이씨는 좋은 술에는 3가지 조건이 있다고 덧붙였다. 우선은 입에서 가볍게 받아야 하고, 한잔을 마시면 두 잔을 더 마시고 싶어야 하며, 세 번째는 나머지 술을 다 마시고도 뒤끝이 깨끗한 술이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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