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관련 사서 특히 왜란 관련 사서에는 일본이나 일본 사람 앞에 늘 평(平) 자가 붙어 있어 궁금증이 있었다. 이와 관련, 인터넷에 떠도는 글에서 왜적들 앞에 붙는 평(平)자에 대한 설명이 있다. 아직 출처와 고증을 하지 못한 바를 이해바란다.
세종 때 매년 쌀 200석을 일본에 주기로 약속이 있었다. 쌀을 받으로 오는 왜선에는 부산 진성의 첨사가 확인 도장을 찍어 가져가는 쌀 수량을 확인했다. 한관희(韓寬熙) 첨사는 어느날 부하들에게 말했다.
"앞으로 대마도서 오는 왜놈은 성을 모두 종놈"이라하고 다른 곳에서 오는 놈은 "시팔놈"이라 해라.
어느 부하가 한자로는 어떻게 표기하는가를 묻자 종놈은 종(宗)이라 하고 시팔놈은 평(平)으로 쓰라고 했다. 종놈들을 종으로 부르는 것은 이해하나 시팔놈을 평으로 표기하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는 말에 十과 八로 파자하면 평이되고 남은 획 -를 조금 틀면 일본글자 노(ノ)자가되니 그래서 '시팔놈'이 된다고 했다. <인터넷 다음 인용. 출처불명>
그 후로 대마도인은 성과 관계없이 무조건 종(宗)으로 시작하고 다른지방 사람은 평(平)자를 붙이게 되었다. 풍신수길은 평수길이 되었고 명나라도 평수길로 표기했다. 명 신종의 풍신수길에게 보내는 칙서는 "皇帝勅諭日本國王平秀吉"이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평행장, 야나가와 시게노부(柳川調信)는 평조신 등으로 표기되고 일본을 뜻할 때도 있었다. 전쟁에서 참혹한 피해를 이런 식으로 패러디하며 자족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에도 시대 묘지다이토계급( 苗字帶刀)은 모름지기 성을 가지고 있었다. 겐(源), 헤이(平) 등이고 후지와라(藤原) 외에는 한국, 중국식으로 외자다. 예컨데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성을 차용하여 헤이(平)라고 정하고 외교문서에 헤이(平)수길(秀吉)이라 하였음이 틀림없다. 히데요시의 침략을 받은 조선측 문서에서 히데요시를 가르켜 평적(平敵<임진록>)이라 쓴 것은 그 때문이다. < 탐라기행>(시바 료타로지음 박이엽 옮김. 학고재.44쪽.1998. 인용)
이익의 성호사설 25권에 있는 히데요시의 인물평에도 평수길이다. 처음 도요토미의 성은 기시다(木下)였다. 하시바시(羽柴)로 개명했다. 본성으로 헤이(平) 씨로 자칭했다. 후에 양자로 가면서 후지와라(藤原)가 되고 그 후 도요토미(豊臣)로 바꾸었다.(일본어판 위키페디아 사전 인용)고 되어있는 점으로 보아 시바의 지적처럼 도요토미가 헤이(平) 씨를 자칭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면 임란 당시의 우리 사서에 수도 없이 나오는 평(平)은 도요토미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왜적들 이름앞에 늘 붙어 있다. 이를 보고 어떤 이는 평(平)을 붙여 원수에게 욕을 한 것이다. 아마 멸시하고픈 데 적당한 풀이로 알맞아 사용하여 카타르시스로 느낄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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